이진수의 ‘그늘을 밀어내지 않는다’(시와시학사)-시집 날개에 적힌 그의 약력은 단 한 줄이다. ‘1962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농사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간결한 약력은 시와 농사라는 두 가지 일의 근원적인 연관성을 상기시켜 준다. 사실 좋은 시를 쓰는 데 어느 학교를 나오고 무슨 매체로 등단했다는 이력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세상의 이치와 자연의 섭리를 배우기에 흙만큼 훌륭한 스승이 어디 있을 것이며 들판만큼 멋진 무대가 또 있을 것인가.
실제로 그의 시는 더러운 것을 마다하지 않는 흙처럼, 또는 그늘 쪽에도 열매를 매다는 복숭아나무처럼 삶의 그늘을 밀어내지 않는다. ‘이 세상 꽃들의 향기가 /그 식물의 땀냄새일 거라고’, ‘늙고 병든 이들에게서 나는 냄새가 /평생 절은 땀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그가 그늘 속에서, 땀과 두엄더미 속에서 피워내려는 것은 ‘지독하고 순도 높은 그 똥꽃 한 송이’(똥꽃)다. 그러기 위해 그는 매일 자신의 손바닥에 못을 심는다. ‘뭉툭해진 삶의 끝을 다듬어 /삽질을 계속하는 동안 /못은 천천히 뿌리를 내린다 /뿌리를 가진 것들이 /싹을 내고 잎새를 달 듯 /손바닥에 심은 못에서도 /나무가 자라고 꽃이 피겠지’(못질) 믿으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에게도 ‘논두렁 기는 일이 땅강아지같이만 여겨지’고 ‘논두렁 깎는 게 맨등에 보리 꺼럭 지는 것보다 싫은’ 날이 있다. 그래서 제초제나 농약통을 들고 나오면 그게 논 잡아먹는 일이라며 그의 어머니는 야단을 친다. 실랑이 끝에 ‘엄니는 엄니대로 일생을 오체투지 논두렁 깎듯 사실 테고 나는 나대로 되나 안 되나 건드렁건드렁 제초제 치듯 살 겁니다’(논두렁 하나 깎을 때도) 하고 중얼거리지만, 새벽 일찍 마늘밭을 매시는 어머니를 보며 ‘마늘밭을 매는 일이 또한 /세상 한구석을 밝히는 일’(어머니의 마늘밭)이라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이처럼 그의 시는 일방적인 피해의식이나 미화된 계몽의식, 그 어느 쪽에도 매이지 않고 삶의 부정과 긍정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흉년에는 금값 되고 풍년에는 똥값 되는 농산물에 대해 농민이 받고 싶은 것은 ‘품값’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의 시어들 역시 그가 흘린 땀의 무게를 넘어서지도 축내지도 않는다. 흔히 책상머리에 앉아 써진 정교한 시들과 달리 그의 시에서는 현란한 수식어나 비유를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노동을 통해 얻어진 경험과 성찰이 소박하지만 무디지 않게 빛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가공되지 않은 원석처럼 군더더기가 없는 만큼 거짓이 깃들 자리도 없다. 그에 따르면 ‘껍질이 얇고 반질반질하면 /잔뿌리가 많은 나무이고 /두껍고 꺼칠꺼칠하면 /그렇지 못한 나무’라고 한다. 이렇게 나무 껍질을 보고 뿌리 생김새를 짐작해 본다면 그의 시는 당연히 ‘잔뿌리 별로 없을 /저기 말 없는 저 나무’(굵은 뿌리)에 해당될 것이다. 얼핏 거칠어 보이지만 안으로는 흙에 가장 굵은 뿌리를 대고 있는 그의 시는 언어의 정교한 잔뿌리만 무성해져 가는 최근 시들의 부박성(浮薄性)을 새삼 돌이켜 보게 한다.
나 희 덕 시인·조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