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8년 왕수인(王守仁·1472∼1528)이 이런 깨달음에 이르렀다는 룽창(龍場). 귀저우성(貴州省) 귀양시(貴陽市) 부근에 있는 룽창으로 가는 길에는 아직도 가난의 뿌리가 깊이 박혀 있었다. 낡은 기차와 허름한 건물들, 문명의 혜택을 그다지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 연일 신문을 오르내리는 동부 해안지역의 빠른 경제발전은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곳은 베트남의 바로 북쪽에 있는 외진 곳이었다. 룽창(龍場)은 예로부터 뱀이 용으로 변했다는 범상치 않은 곳이지만 당시 그곳은 왕수인의 유배지였다. 그는 황제의 곁에서 막강한 권세를 누리던 환관의 횡포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40대의 장형(杖刑)을 받은 후 그곳에 유배됐다.
그곳에서 왕수인은 머물 곳이 없어 손수 움막을 지어야 했고 먹을 것이 없어 노비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나무를 하고 물을 길어야 했다. 맹수와 독충과 독사가 그의 생명을 위협했을 뿐 아니라 그 지역 사람들조차 그에게 적대적이었다. 그곳은 언어조차 통하지 않는 곳이었다.
하지만 약 20년 전 주희의 공부방법(格物·격물)에 따라 사물을 마주하고 그 하나하나의 이치를 깨우치려 온몸을 던져 시도했던 왕양명의 공부가 그곳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그를 거의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주희의 어려운 공부방식과 달리 이것은 자신의 내면에서 우주의 이치를 읽어내는 간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이 깨달음은 역사상에서 양명학(陽明學)의 성립을 알리는 것이었다.
룽창에서의 깨달음은 다행히도 그의 학문뿐 아니라 그의 삶 또한 바꿔 놓았다. 그가 깨달음을 얻은 후 그 지역 ‘야만족’들과 관계는 차츰 개선됐고 그를 따르게 된 야만족은 그의 허름한 오두막을 안타깝게 여겨 그 옆에 누각과 서재 등 많은 건물을 지어주었다. 초라해 보이는 입구와 달리 안으로 들어갈수록 험난한 바위 사이로 꽤 규모 있는 건물들이 여러 채 들어서 있는 룽창의 모양새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지는 않는 듯했지만 깨끗이 정리된 모습이며, 왕수인이 제자들을 거느리고 있는 모양의 거대한 동상과 새로 세워진 기념관 등 그에 대한 이 지역의 대접은 그가 떠난 지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소홀함이 없어 보였다. 그 동상과 기념관 주변을 뛰어다니는 천진난만한 아이들도 왕수인이 찾은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이었다.
왕수인은 “내 마음이 곧 순수하고 완전한 지혜의 바탕(心卽良知)”이라며 사회윤리와 진리의 기준이 인간 개개인의 마음 속에 있음을 설파했다. 주희의 말처럼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이치가 마음 밖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면 그것은 인간을 억압하는 타율적인 것이기 때문에 자발적인 도덕적 욕구를 이끌어낼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인간의 자발적 도덕성을 이끌어내 이상적인 사회를 이루려면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울려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공부 방법은 한편으로는 불교의 선(禪)과 같이 탈세간적인 내면적 수양으로 나아갈 수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기존 체제와 지식을 부정하며 만인이 평등하다는 혁명적 사상으로도 나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두 개의 길은 왕수인의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몫이었다.
실제로 훗날 그의 제자들은 이 두 길로 나아갔지만, 왕수인은 룽창에 오기 4∼5년 전에 고향인 저장성(¤江省) 위야오(余姚)에 은거하며 중요한 점을 깨달았다. 어버이에 대한 사랑, 즉 효(孝)는 인간 감정의 기초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바로 공자의 가르침의 핵심이었다. 여기서 그는 불교적 출세간을 벗어났고 기존의 유교적 가치관을 유지했다. 그의 공부방법은 혁신적인 것이었지만 그가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며 읽어 낸 진리의 내용은 공자나 주희가 추구했던 가치관과 다르지 않았다.
사실 그는 공자와 주희가 추구했던 이상을 당시의 사회에서 보다 효율적으로 설파하고 실천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이 방법은 주자학에 대해 근본적으로 회의해 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고 그의 제자들은 이를 통해 새로운 길로 나아갔다.
왕수인이 출세간의 길을 고뇌하다가 유가로 돌아왔다는 그의 생가는 룽창과 달리 주택가 틈에 초라하게 갇혀 있었다. 하지만 그 집 입구에서 한가로이 신문을 읽던 노인과 빨래를 걷던 아낙은 모두 그를 기억했다.
철학박사 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