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 지킴이’ 고주영씨 “궁궐, 아는만큼 느끼죠”

  • 입력 2002년 12월 8일 17시 39분


“궁궐에 대해 우리가 모르는 사실이 얼마나 많은데요. 궁궐에 유독 개암나무가 많은 이유를 아세요? 조상들이 개암나무가 귀신을 쫓는다고 믿었기 때문이지요.”

대학원 석사과정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있는 고주영씨(30·한국외국어대 이탈리아어과)는 우리 궁궐 이야기만 나오면 눈빛이 또렷해진다. 특히 경복궁에 관해서는 아는 것도 많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도 많다.

“조선시대 후궁은 함부로 왕비의 처소인 경복궁 교태전에 들지 못했어요. 걸핏하면 후궁들이 교태전을 찾아 왕비에게 따져 묻곤 하는 요즘 사극의 모습과는 차이가 많지요.”

또박또박 이어가는 그의 설명을 듣다보면 어느새 조선시대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고씨는 매주 토요일 경복궁을 찾는 관람객에게 궁궐에 관한 설명을 해준다. 우리말로 영어로 일본어로, 또 때로는 수화(手話)로. 그는 자원봉사자단체인 ‘우리 궁궐 지킴이’의 일원이다. 2000년 12월 가입해 교육받은 뒤 2001년 4월부터 본격적인 봉사활동에 나섰다.

“어릴 때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는데 우연히 궁궐 지킴이에 대해 알게 됐고, 한달음에 가입 신청서를 쓰러 달려갔지요.”

타고난 어학실력은 그가 자원봉사 안내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전공인 이탈리아어는 물론, 영어와 일본어 회화도 수준급. 이탈리아어를 배우면서 함께 공부한 프랑스어와 스페인어 실력도 상당하지만 여간해선 쓸 기회가 생기지 않는다. 프랑스나 스페인에서 온 외국인도 으레 영어로 말을 붙여오기 때문이다. 요즘은 중국어도 배우고 있다. 우리 궁궐의 아름다움을 될 수 있으면 많은 외국인에게 알리고 싶어서다.

물론 우리말 안내도 열심이다. 누구라도 우리 궁궐 지킴이 홈페이지(www.palace.or.kr)에 접속해 예약하면 안내를 받을 수 있다. 150여명의 자원봉사자가 활약하는 궁궐 지킴이의 무료 안내는 각급 학교나 유아원 등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그는 수화로도 안내를 한다. 수화는 대학 시절 청각장애인 부부의 이웃에 살면서 배웠다. 만나면 늘 웃어주는 그 부부에 마음이 끌렸는데,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자 청운회관을 찾아가 배웠다. 마침 궁궐 지킴이로 첫 안내를 서울 선희학교(청각장애인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게 돼 수화를 배운 보람을 크게 느꼈다. “청각장애인들이 궁궐 안내 요청을 하는 경우가 많지 않아요. 부담없이 다가와 주면 좋을 텐데….”

돈 버는 일도 아니고 시간도 녹록지 않게 들어가는 자원봉사를 그가 그만둘 수 없는 이유는 뜻하지 않게 만나는 기쁨과 보람에 있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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