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리포트]100년전 청바지의 ´부활´

  • 입력 2002년 12월 12일 16시 08분


리바이스 501 빈티지진. /사진제공 뉴욕타임스
리바이스 501 빈티지진. /사진제공 뉴욕타임스
작년 5월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청바지 경매에서는 낡아빠진 리바이스 청바지 한 장이 4만6532달러(약 5580만원)에 팔렸다. 리바이스사가 되사들인 이 청바지는 1880년대 제품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었다.

네바다주의 한 광산에서 발견된 이 청바지는 패션계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화재와 지진으로 이 회사 본사와 창고가 파괴돼 현재까지 남아있는 옛날 청바지가 많지 않기 때문. 리바이스는 작년말 이 고물 청바지를 복제한 ‘네바다 진’ 500장 한정품을 장당 400달러에 팔았다.

뉴욕 맨해튼의 소호에 직장이 있는 트로이 피어스는 청바지 한 장을 샀다 하면 1년 이상 계속 입는다. 오토바이를 타거나 지하철 체인점에서 사 온 음식을 먹을 때도 청바지 차림이다. 일할 때나 빈둥거릴 때나 청바지다. 딱 두 차례, 찬물에 손빨래를 했다. 오토바이에 닿아 해진 단, 지갑 지퍼에 쓸려 약간 찢어진 뒷주머니, 펜 자국 등등 그의 모든 것이 녹아있는 청바지가 됐다.

8월 어느 날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리바이스 디자이너의 눈길이 이 청바지에 꽂혔다. 디자이너는 청바지를 벗어달라고 했다. 복제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구겨지고 찢기고 닳은 지금 모습 그대로. 피어스씨는 처음엔 “이 청바지는 나만의 것, 제2의 피부”라면서 “1년 이상의 내 인생을 몇 시간만에 복제하는 것 같아 싫다”고 거절했다. 그러나 일주일 뒤 그는 “내 청바지가 가게에 진열되는 것을 보면 재미있겠다”면서 무료 복제를 승낙했다.

이 청바지는 켄터키주의 한 회사로 보내졌다. 새 청바지를 낡은 것으로 만드는 회사다. 이 회사를 운영하는 바트 사이츠와 모조전문가인 딕 게인스는 냄새나는 청바지를 이틀 간 면밀히 분석했다. 새 청바지에 화학약품과 수지(樹脂)를 칠하고 손으로 갈고 표백작업을 해서 복제품들을 만들고 있다. 이 청바지들은 리바이스의 ‘뉴 빈티지 진’으로 곧 진열대를 장식하게 된다고 뉴욕타임스 매거진이 최근 전했다. 캘빈 클라인과 리바이스에 오래된 것처럼 보이는 청바지를 공급하는 업체의 로건 그레고리는 “새 청바지를 이틀간 입어 줄이 잡히게 한 다음 풀을 먹이고 심심할 때 샌드페이퍼로 무릎과 허벅지 부분을 문지른다”고 말한다.

리바이스는 내년 501(1890년에 처음 사용한 제품분류번호로 여밈 부분에 단추를 사용했고 주머니가 5개 달려있는 것이 특징) 축하 한정품 501장을 장당 501달러에 팔 계획이다. 이것들은 말을 돌보던 사람이 입어 너덜너덜해진 1917년 리바이스 제품을 모델로 복제된 것이다. 리바이스의 창업자 리바이스 스트라우스가 청바지를 만들어 판 지 150년이 되는 내년을 위한 기념 디자인 제품이다.

뉴 빈티지 진은 1990년대 일본인들이 불붙인 ‘빈티지 열풍’이 엔화약세를 계기로 1998년부터 수그러들 무렵 시장에 본격적으로 나왔다. 디젤, 랄프 로렌, 리바이스 등의 뉴 빈티지 진은 한 장에 150∼200달러. 한창 때 유명 중고 진이 1000달러 수준이었던 것에 비하면 훨씬 싸다. 뉴 빈티지 진의 공세에 밀려 빈티지 진 가격도 125∼300달러로 낮아졌다.

업계의 뉴 빈티지 진 경쟁은 요즘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게 잘 닳고 잘 바랜 모델을 찾아내는 게 관건이다. 빈티지와 뉴 빈티지를 합해 올해 105억달러 규모였던 세계 시장은 어느 정도 확대되겠지만 10년 전의 열기에는 미치지 못할 전망이다.

뉴욕 트라이베카에서 빈티지 진 업체를 운영하는 로건 그레고리는 “10년 전 빈티지 열풍 때는 인디고 염색에 미제 중고품이라면 무조건 잘 나갔다”고 말했다. 당시 일본인들의 관심은 바지 끝이 해졌는지, 리바이스 상표에 대문자 E자가 있는지, 가죽 패치에 XX 표시가 있는지, 뒷주머니가 싱글 스티치 처리됐는지에 있었다는 것.

흔히 ‘폐광에서 발견했다’는 설명을 붙여 시장에 나왔던 오래된 청바지들은 일본에 가면 부르는 게 값이었다. 중간 상인들은 처음엔 한 장에 200달러에 사들여 400달러에 일본에 넘겼다. 얼마 뒤 값이 치솟아 1000달러에 구한 물건을 일본엔 1500달러에 수출했다. 일본 바이어에게 넘어간 최고기록은 2만5000달러(약 3000만원). 벼룩시장에서도 수십년 된 낡은 청바지라면 수천달러를 호가했다. 청바지 업자들은 그 시절이 그립겠지만 이젠 과거의 일이 돼버렸다.

뉴욕〓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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