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한국영화의 희망…전용관 만들어 키울때▼
그 어느 때보다 한국 영화는 멀리 여행하고 있다. 칸이나 베니스영화제와 같은 국제 영화제뿐만 아니라 싱가포르나 홍콩, 일본, 베트남의 극장가 그리고 외국 대학의 작은 영화제까지. 먼 여행길, 배낭에 담긴 영화들도 각양각색이다. ‘취화선’이나 ‘오아시스’와 같이 국제 영화제 수상작만이 아니다. 단편과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등 길 떠나는 21세기 한국 영화의 스펙트럼은 넓다.
이러한 스펙트럼에 도달하기까지 한국 영화사엔 몇 번의 드라마틱한 순간들이 있었다. 1926년 나운규의 ‘아리랑’ 이후 이규환의 ‘임자 없는 나룻배’(1932)로 이어지던 20, 30년대. 김기영 유현목 신상옥 감독의 작가 영화들 그리고 코미디와 멜로드라마 등의 장르 영화로 번성하던 1960년대의 황금기. 이제 2002년이 저물어 가는 12월, 과거의 그 이미지와 소리는 우리에게 어떻게 돌아오고 있는가.
현재 우리가 맞고 있는 한국 영화의 전환기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 번째는 세계화(할리우드화)에 맞서는 한국형 블록버스터 전략이다. 여기엔 투기 자본 및 창의적 기획자들과 감독들이 있다. 두 번째는 그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국내 와이드 릴리스(대량 배급)를 가능케 하는 멀티플렉스 극장들의 포진이다. 그리고 아시아 시장과 미국, 유럽 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해외 배급의 활성화 전략이 있다. 세 번째는 작가 영화와 대중 영화의 경계를 살짝 오가는 감독들의 등장이다. ‘봄날은 간다’의 허진호, ‘반칙왕’의 김지운, ‘플란더스의 개’의 봉준호 감독 그리고 ‘접속’과 ‘텔미 섬딩’의 장윤현 감독들이 그들이다. 이 경계는 사실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나운규와 이규환 그리고 김기영 유현목 신상옥 감독 등으로 한국 영화사를 돌아볼 경우 그 중요한 매듭은 대중성과 창의성이 만나는 바로 거기서 단단히 꼬여지기 때문이다. 네 번째는 임권택 이창동 감독 등 한국을 넘어 해외 영화제의 붉은 카펫에 서 있는 혹은 서 있고자 하는 감독들의 포진이다. 마지막은 소수집단을 다루는 감독들의 활약이다. 여성, 노인, 어린이와 청소년의 이야기들이 저예산 장편 영화, 다큐멘터리, 단편 영화라는 형식을 통해 펼쳐지고 있다. 미래 한국 영화의 희망은 바로 이들 마이너 영화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부터다. 현재 한국 영화의 폭발적 분출이 진정한 황금기로 가기 위해선 다양한 영화들이 제작되어 관객을 만나는 것이 절대적이다. 그러나 한국형 블록버스터 방식과 멀티플렉스는 외부의 적인 할리우드영화를 방어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내부의 다양한 한국 영화들을 돌보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 마이너 영화는 물론 경계에 선 영화들까지도 관객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스크린쿼터만으로는 부족하다. 예술영화 전용관을 짓고 현재 각 지역에 있는 문화센터를 부지런히 개조해 영상물을 제대로 상영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마이너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엔 세제 혜택도 주어야 한다.
그리고 다양한 영상물의 지속적 생산을 위해 초중고교 정식 과목으로 영상미디어 교육을 채택해야 한다. 이렇게 미래에 투자할 때만 진정으로 생명력 있는 영화들이 한국을 대표해 멀리 날아오를 수 있을 것이다.
김소영 영상원 교수·영화평론가
▼30代의 도전-열정…국악이 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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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유경화 타악기 독주회가 있었다. 이제 30대 중반에 들어서는 이 여성 연주자는 동서양 타악기의 영역을 넘나드는 다양한 선곡과 당찬 풍모로 관객에게 인상적인 연주를 들려주었다. ‘상상’이라는 트리오의 구성원들인 강은일 허윤정, 그리고 유경화의 연이은 독주회를 통하여 이전의 연주회와는 다른 새로운 음악에 대한 갈증과 변화하는 연주자들의 의식을 접할 수 있었다. 이들은 모두 한 곡씩 자신이 작곡하고 연주하는 프로그램을 포함시켜 자신들의 창작 욕구와 의지를 소박하게 실천하고 있었다.
올해는 전반적으로 국악 관현악과 창극 등에서는 신선하고 감동적인 공연이 드물었던 반면 개인독주회와 소규모로 구성된 다양한 형태의 실내악단의 연주활동에서는 젊은 세대의 의욕과 참신함이 돋보였다. 이 중 올해 두드러졌던 30대의 활발한 연주활동은 미래 한국음악의 변화를 예고할 만큼 음악의 내용과 형식에서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며칠 후 있게 될 김용우 노래공연은 기획사나 개인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인터넷상에서 모인 김용우의 팬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무대로 또 다른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금 20대 전통음악 분야에 있는 음악가와 학생들도 미래의 활로를 이런 30대의 활동 맥락 속에서 모색하고 있는 듯하다.
전통음악은 히틀러가 바그너를 추앙했던 것처럼 민족패권주의에 의지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서구화된 체제에 안주해서도 안 될 것이다. 우리는 흔히 전통예술의 르네상스로 불리는 조선 영조 정조시대, 판소리와 가곡이 양식화되었던 그 시대를 그리워만 하고 있을 수 없다.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완벽을 향한 도전의식을 지닌 우리 당대의 창작 음악으로 또 다른 르네상스를 꽃피워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11월과 12월에 있었던 트리오 ‘상상’의 멤버인 거문고의 허윤정, 해금의 강은일, 타악기의 유경화의 독주회를 비롯해 2002년에 눈부신 작품활동으로 KBS국악대상 작곡부문상을 받는 김대성의 작곡활동은 작고 여린 몸짓이지만 창의적인 음악활동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다가올 2003년의 음악계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게 한다.
원일 전통예술원 교수·작곡가
▼돈되는 해외춤 러시…국내작품 퇴행▼
올해 춤계가 주목한 사안은 국공립 단체의 단체장 임기 만료와 노조 결성, 해외 작품들의 상품화 추세, 그리고 월드컵 및 아시아경기 문화 행사로서 춤의 대대적 참여였다. 이들 동향에서 읽어낼 것은 경영 조직 개선과 동시에 국제성의 축적이 춤계 현안으로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상반기 춤계는 월드컵의 파급 효과를 기대하였고 월드컵 개최지마다 동반한 춤은 전국적으로 ‘춤 엑스포’라 할 만한 규모를 과시하였다. 한국팀의 선전(善戰)과 응원의 함성에 파묻힌 데에다 졸속 기획으로 춤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은 가시적 성과가 무산되었다. 월드컵의 예상 밖 선전으로 높아진 국가 위상은 춤에서도 대외 협력 역량을 강화시켜 줄 것으로 전망된다.
하반기 춤계의 대표적 화두는 연말 무렵 임기 만료를 앞둔 주요 공립무용 단체장들의 후속 인사 문제였다. 개인과 민간의 열악한 창작 환경과 비교가 되지 않는 여건의 공립무용단 책임자 인선은 춤의 공공성 실현 측면에서 당연한 관심사다. 후속 인사는 내년 초 마무리되겠으나, 올 들어 부쩍 공립단체장들의 인선이 여론화되는 것은 책임운영기관화 추세이래 인사에서의 투명성과 경영 및 창작 능력을 중시하는 의식이 퍼져가고 있음을 대변한다.
공립무용단의 투명성에 대한 기대감은 올해 국립무용단과 발레단 등에서의 노조 결성으로 이어졌다. 다만 공립무용단 내부에서 단원 평가 방식을 둘러싸고 대립하거나 잠복한 노사간의 이견은 공공성 실현을 중심으로 해소되어야 할 것이다.
국제 교류가 매우 잦아지고 또 유럽과 미국에 치중하던 상황을 벗어나 동북아를 포함하는 차원으로 다변화되는 것은 최근 몇 해 춤계의 일반적 흐름이다. 9월의 최승희 기념 국제 행사, 5월 일본 도쿄에서의 한일협력 춤 무대도 동북아 춤 교류 시스템이 점차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말해주었다.
이런 속에서 올해의 국제 교류는 무용인들간의 교류를 벗어나 주로 유럽의 춤 작품들을 국내 일반 관객에게 상품으로 내세우는 경향이 현저하였다. 이들 해외작은 우선 높은 완성도에 힘입어 호응이 따랐고 국내 관객들의 춤 안목 향상과 관객 저변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자본력 있는 대극장들이 주도한 이러한 해외작 초청 기획이 국내 작품과 안무가 발굴을 도외시한 상태에서 이뤄져 심한 불균형을 드러내었다.
국제현대무용제가 우수한 해외 초청작으로 쇄신될 조짐을 보인 반면 월드컵 문화 행사를 명분으로 연극제와 합쳐 서울공연제로 진행된 서울무용제는 질적으로 퇴행을 면치 못하였다. 올해의 춤 작품들에서는 동작량과 역동적 분위기가 증대하였는데, 이는 관객층에서 젊은 세대의 비중이 커지는 데 대응한 변화로 보인다. 반면에 서사성(敍事性)의 감퇴에 따라 춤 구성이 느슨해지는 경향은 차후의 숙제로 넘겨졌다.
김채현 무용원 교수·무용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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