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386년부터는 아예 법을 새로 만들어서 디오니소스 제전 기간에 3대 비극작가의 작품을 비경쟁부문으로 돌려서 연속 공연하는가 하면, 비극시인들의 전신 초상조각을 큼직한 대리석으로 깎아서 극장 내부의 제일 좋은 장소에다 전시하기도 했다.
그런데 비극시인들의 작품이 공연되었던 디오니소스 극장은 어디쯤 있었을까? 그리스 최초의 극장의 위치는 전설과 추측 속을 떠돌다가 1765년 리처드 챈들러가 아크로폴리스 남쪽 벼랑에서 옛 폐허를 확인하면서 보란 듯이 역사의 지평 위로 떠오른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바로 코밑에 있었는데도 몰랐던 것이다.
1862년부터 서른 해 넘게 발굴을 마치고 보니, 객석이 세로 85열에다 관객 1만7000명을 수용하는 엄청난 규모의 극장이 위용을 드러냈다. 이 정도면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의 6배,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의 4배가 넘는다는 이야기다. 또 무대를 바라보는 맨 앞줄 중앙에는 디오니소스 사제가 앉았다는 육중한 대리석 귀빈석도 남아 있었다. 극장 바닥 면을 들추어보니, 가장자리를 파서 물길을 낸 배수로의 빗물하수 처리용량이 시간당 500㎥까지 거뜬해서 고고학자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극장의 구조였다. 조개 껍데기처럼 오목하게 생긴 객석의 생김새는 누구나 다 아는 고대 그리스 극장의 전형이다. 디오니소스 극장의 경우, 무대에서 객석 맨 끝줄까지는 무려 112m. 그런데 청음효과가 그만이었다. 가물가물한 거리에서 배우들이 나누는 대화가 꼭 귀에 갖다대고 말하는 것처럼 또렷하게 전달되는 것이었다.
크기가 반쯤 되는 인근 에피다우로스의 극장에서는 배우들끼리 소곤거리는 귓속말과 남몰래 뱉는 탄식 소리까지 잡혔다. 도대체 고대 그리스의 극장 건축가는 어떻게 이런 솜씨를 부렸을까?
현대적 계측장비를 동원해서 디오니소스 극장의 음향효과를 실험해보니 새로운 사실이 하나 더 밝혀졌다. 무대에서 나온 소리가 전달될 때 경사진 객석에 빽빽하게 운집한 관객들의 체온이 형성하는 상승기류에 올라탄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때 음파가 직진하면서 들뜨지 않고 규칙적인 파도를 형성하면서 때려붙이듯 관객의 귀에 달라붙는 현상이 확인되었다.
무대와 객석의 중간에는 ‘오케스트라’라고 불리는 반원형 바닥면이 있는데, 매끈하게 연마한 대리석 바닥이 직경 19.5m의 거대한 공명판 역할을 하면서 튕겨나온 음향에 탄력을 더하고, 조개껍데기처럼 생긴 극장 객석의 오목한 구조가 깔때기 역할을 하면서 관객들은 흡사 확성기 안에 들어가 있는 형국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흙으로 구운 연극가면을 쓰고 웅웅거리는 배우들의 대사도 알아듣기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디오니소스 극장의 무대를 해체해보니까 대리석 무대 아래에서 엉뚱한 지하 구조물의 흔적이 나타났다. 석재도 다르고, 벽쌓기 방식도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원형을 더듬어 복원한 가상무대는 현재의 객석과도 방향이 들어맞지 않았다. 지하구조물의 수수께끼는 곧 초기 극장형식의 연구를 촉발하고, 뜻밖의 결과가 학계를 놀라게 했다. 현재 극장은 기원후 61년 네로 황제를 기려서 한 차례, 그 다음 3세기 로마제국 후기에 집정관 파이드로스의 마지막 개축을 거친 모습이었던 것이다.
조개껍데기처럼 생긴 반원형 극장이 그리스에서 처음 지어진 것은 기원전 4세기 중엽. 아테네의 디오니소스 극장이 처음이었다. 이 획기적인 극장구조의 발명자는 모른다. 그리고 그보다 앞선 기원전 5세기에는 극장이 말발굽 모양의 객석에 디귿자 형태의 무대구조였다. 비극시인들의 작품도 이런 곳에서 공연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는 아크로폴리스 언덕배기에다 소박한 간이의자를 놓고, 맨땅에서 흙 냄새를 맡으며 공연했을 것이다.
noshin@kornet.net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