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한국의 차도' 펴낸 최차란씨 "茶는 철학입니다"

  • 입력 2003년 1월 5일 18시 07분


“이는 본시 우리 것이니 다시 가져가겠습니다.”

1976년 일본의 다도(茶道) 사범 자격증 심사장. 한국 여성으로 드물게 이 자격증 시험에 합격한 무초 최차란(無草 崔且蘭·77·경북 경주시 마동)씨는 심사위원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일본의 다도 선생들은 무릎을 치면서 답했다. “그래, 그것을 모른다면 다도를 배웠다고 할 수 없지.”

그리고 다시 20여년이 지난 2002년 말 최씨는 ‘한국의 차도’라는 책을 한국어와 일어로 펴냈다. 이 책은 일본의 다도가 한국에서 건너간 것으로 그 실행원리가 우리의 전통적 밥상차림에 근거한다는 점을 주장한다. 나아가 차 한잔 마시는 행위가 어떻게 ‘도(道)’로 발전할 수 있는지 그 철학적 원리를 설파한다.

“일본의 다도는 ‘도’라는 용어를 쓰면서 정작 그것이 왜 ‘도’인지를 몰라. 고작 생활규범에 머물렀지. 차도는 우주, 태극(우주의 에너지가 뭉쳐 별이 되는 세계), 삼성(태양 달 지구), 자연, 생활 이 다섯 세계를 한 줄기 흐름으로 깨치는 것이야.”

최씨는 동학 교조인 수운 최제우(水雲 崔濟愚)의 후손으로 3대째 옹기장이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흙 빚기를 좋아했지만 집안의 반대로 골동품상 등을 전전했다. 그러다 1972년 일본 도쿄 국립박물관에서 일본의 국보 정호다완(井戶茶碗)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조선초 밥그릇으로 쓰였을 흔한 막사발이 일본의 국보가 된 수수께끼는 이후 그의 일생을 관통하는 화두가 됐다.

그는 일본열도 전역의 다도 사범을 만나 그 비밀을 찾다가 결국 일본 다도에 입문한다. 그리고 일본의 다도가 한국의 차례(茶禮)문화가 옮아가 발전한 것임을 발견하고 이를 한국에 다시 이식해 1979년 ‘한국차인회’를 발족시켰다.

하지만 그에겐 정작 차도가 왜 ‘도’냐는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그 열쇠는 정호다완의 재현에 있었다. 그는 돈벌이가 좋던 골동품가게를 미련 없이 팔고 경주 토함산 자락에 새등이요(史等伊窯·‘동쪽언덕의 가마터’라는 뜻의 이두식 표기)를 열었다. 그리고 30년간 도자기를 빚는 데 필수적인 물, 불, 흙, 바람의 원리를 통해 비로소 정호다완의 비밀과 차도를 터득했다.

“정호다완은 하찮은 신분의 조선 도공이 무심의 경지로 빚은 작품과 그 진가를 알아본 일본 차인들의 ‘내면의 경치’가 더해져 명품의 반열에 오른 겁니다.”6·25 전쟁으로 남편과 딸을 잃는 불행을 겪었고 폐암과 자궁암으로 수없이 생사를 넘나든 최씨. 그는 지금 새등이요를 전통 도예와 차도를 체험하는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느라 여념이 없다.

경주〓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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