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키워요]일기책 펴낸 영재 건우 엄마의 가정교육법

  • 입력 2003년 1월 7일 17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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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섯 살 때 동네 미술학원에 갔다가 사흘 만에 쫓겨난 일이 생각난다. 의자 밑으로 기어다니며 친구들 바짓가랑이에 사인펜으로 그림을 그려 버린 사건과 미끄럼틀을 거꾸로 타는 나를 따라 친구들 모두 거꾸로 미끄럼틀을 타버린 소동 때문이었다. 그 이후로는 동네 문화센터나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는 게 내게는 큰 즐거움이었고….’

제주 남광초교 3년 현건우(10)가 최근 ‘보물섬으로 날아온 뻐꾸기’(바오로딸)란 책을 펴냈다. 이 책은 건우가 1학년 때 쓴 일기를 묶은 것. 정확히 말해 이들 일기는 건우가 자신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쓴 것이지만 그림색칠과 자기소개 및 표지설명은 ‘어른들’이 건우의 약한 마음을 ‘이용해’ 하도록 시킨 것이다.

“건우의 얘기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책으로 냈지만 수도사제가 꿈인 건우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주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엄마 김애순씨(43)는 책을 낸 것도, 인터뷰를 하는 것도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아직 어린데 건우가 치를 유명세가 걱정스럽다는 설명이었다. 일기에 나온 건우는 엄마의 고민같은 것은 눈치채지 못할 것 같은 솔직하고 순진한 초등학생이다. 친구들과 뛰어노는 것이 마냥 즐겁고, 좋아하는 여자친구에게는 싫은 척을 하기도 하는.

‘유나에게 한대 맞고야 말았다. 유나에게 맞아도 기분이 나쁘지 않으니 참 이상한 일이다.’(6월 19일)

‘나는 요즘 골치가 아프다. 상우에게 말 못할 고민을 안고 있다. 엄마 아빠보다 형님이 좋아요라는 말은 정말 기분이 좋은데 똥 닦아 달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걱정부터 앞선다.’(9월 3일)

‘아빠의 모습을 보니 너무 뚱뚱해 보였다…아빠껜 좀 죄송하다. 마음의 상처를 드린 것 같아서. 나도 뚱뚱하면서 뚱뚱한 아빠라고 했으니.’(12월 18일)

뛰어난 글솜씨도 글솜씨지만 일상 속에서 놀라운 영적 감수성을 보여준다. 동생과 꽃가게에서 산 꽃씨를 보면서 ‘어떻게 그 엄청난 생명을 숨겨 놓으셨을까’하고 하느님의 섭리를 느끼는가 하면 오르락내리락하는 엘리베이터를 쳐다보면서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은 몇층일까? 이번에 내릴 곳은 하느님이 계신 천국이었으면 좋겠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엄마 김씨는 “결혼 7년 만에 가진 첫아기였기에 임신 10개월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미사에 나갔고 출산 후에도 아이와 함께 교회활동에 참가했다. 요즘에도 온 가족이 아침저녁으로 기도한다”고 말했다. 건우의 영적 감수성은 가정분위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건우가 유치원이나 학원을 다니지 않고서도 가장 나이 어린 제주 과학영재교육원 학생이 된 것이 궁금했다.

"누워있을 때부터 큼지막한 유모차에 태우고 하루종일 돌아다녔습니다. 자연을 벗삼아 대화하고 책을 읽어 주었어요. 1 대 1교육보다 더 좋은 교육은 없지요. 서울이나 이곳이나 학원 때문에 시간에 쫓기는 아이들을 보면 안타까워요. 비어 있는 시간이 있어야 아이가 행복감도 느끼고 생각할 여유도 갖지 않을까요?”

김진경기자 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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