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파인만의 여섯가지 물리 이야기

  • 입력 2003년 1월 10일 17시 38분


파인만이 강의에 사용한 도형들.
파인만이 강의에 사용한 도형들.

◇파인만의 여섯가지 물리 이야기

리처드 파인만 지음/박병철 옮김/246쪽/9800원/승산

‘구름에 가려져 있을지라도,

태양은 하늘에 빛나고 있노라.

그곳은 거룩한 의지가 지배하나니,

세상이 맹목의 우연을 받들지 않으리라….’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에 나오는 ‘카바티나’를 들으면 가슴이 벅차온다. 거룩한 의지에 의해 정연하게 움직이는 세계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뉴턴 이후 ‘거룩한 의지’는 물리학을 자신의 대변자로 삼은 듯했다. 천체의 운행은 간단한 중력 법칙에 의해 깨끗하게 설명되며 중력 이론이 풀지 못한 수수께끼도 ‘상대성 이론’이 속시원하게 해결한 듯이 보였다.

그러나 어쩌랴. 오늘의 물리학은 ‘맹목의 우연’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극미(極微)세계의 현상을 설명해주는 양자역학이 확률과 우연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이 ‘신은 주사위놀음을 하지 않는다’며 역정을 낸 것도 당연하다.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1918∼1988). 최근 한국인에게 그의 이름은 ‘무명’에서 ‘친숙’으로 줄달음쳐왔다. 3년 전, 10년 만에 재번역된 ‘파인만씨 농담도 잘하시네!’(사이언스북스)가 유머와 기지로 가득 찬 그의 생애를 생생히 전달했고, 이듬해 나온 ‘발견하는 즐거움’(승산)과 ‘파인만의 QED 강의’(〃)는 과학자의 신조 및 그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양자전기역학의 이론체계를, 지난해 출간된 ‘투바:리처드 파인만의 마지막 여행’(해나무)은 탐구심 왕성한 매력적인 인간의 체취를 풍요하게 전해주었다.

그러나 그의 진면목은 60년대 칼텍(캘리포니아 공대)에서 학부생을 대상으로 행한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에서 엿볼 수 있다. 이번에 나온 ‘여섯 가지 물리 이야기’는 그가 남긴 교재 중에서 일반인도 이해할 만한 여섯 개의 장(章)을 간추려 묶은 책이다.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는 다양한 일화를 남긴 명강의로 알려져 있다. 그가 강의를 하면 대형 강의실도 미어터졌기 때문에 학교측에서는 강사의 이름을 매번 비밀에 부쳐야 했다. 학기 중반이면 많은 학생들이 빠져나갔지만 대신 동료 교수와 박사과정 연구자들이 영감을 찾기 위해 그 자리를 메웠다. 대학 초년생용 강의에서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매료시켰을까.

“우린 당신을 사랑합니다”1988년 리처드 파인만이 타계한 직후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학생들이 ‘딕, 당신을 사랑해요’라고 쓰인 현수막을 내걸었다. 딕은 리처드의 애칭.사진제공 승산

파인만은 정교하지만 지루한 수학법칙에 의존하던 기존 이론물리학의 틀에서 벗어난 ‘괴짜’였다. 그에게서는 수식(數式)보다 직관이 먼저였으며, 수학을 동원하지 않고서도 주변의 친숙한 사물에 빗대 첨단의 개념을 끌어낼 수 있었다. 이런 점이 새내기 대학생뿐 아니라 동료들마저 매혹시켰던 것이다.

책의 6개 장은 각각 원자론, 물리의 기본개념들, 다른 과학과의 관계, 에너지 보존법칙, 중력, 양자역학에 바쳐진다. ‘개구쟁이 데니스의 레고블록 숨기기’를 통해 에너지 보존법칙을 간단히 풀어내는 것은 단지 간단한 몸풀기에 불과하다고 하자. 책의 가장 빛나는 부분은 ‘우연과 확률’을 설명한 마지막 장에 숨어 있다.

우리의 상식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불확정성 원리’를, 전자의 운동방식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는 여기서 마탄(魔彈·사수의 의지와 상관없는 방향으로 발사되는 총알)을 쏜다. 2개의 철판구멍을 두고 난사되는 총알의 탄착점과 역시 2개의 구멍으로 생겨나는 물결의 간섭, 우리가 ‘입자’라고 알고 있는 전자는 어떤 운동모델을 따를 것인가. 오늘날 수많은 물리 입문서가 모방해 낯설지 않은 얘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재기 넘친 말투로 생생하게 전하는 설명은 듣는 이에게 분명 다른 감흥으로 다가온다.

그가 강의를 한 지도 40년이 흘렀다. 소립자의 계열에 질서를 세운 ‘쿼크’ 이론이나 ‘궁극의 이론’에 한발 다가섰다는 초끈이론, M이론 등의 최신 내용은 이 책에서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세계가 숨겨둔 비밀을 하나씩 벗겨나가는 지적 쾌감, 경이의 세계를 하나씩 열어젖히는 떨림과 즐거움은 언제까지나 파인만에게서 가장 ‘파인(멋진)’한 것으로 남아 있다.

도서출판 승산은 전공자를 위한 ‘파인만의 또다른 물리 이야기’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 등을 잇달아 출간할 계획이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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