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은 현실 사회를 연구대상으로 할 뿐 아니라 정책 입안 및 시행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사회의 변화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실제로 한국의 많은 사회과학자들이 건국 후 근대화라는 국가 과제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고 또 한편으로는 민주화운동에 참여해 한국 사회의 실질적인 민주화에 기여하기도 했다.
이들은 이제 서구의 이론 연구를 심화하는 한편 사회과학의 한국화를 모색하며 일부는 새 정부의 출범에도 참여하고 있다. 정치학(政)·경제학(經)·사회학(社)을 중심으로 사회과학계의 세대별 인적 변화와 학문적 동향 및 지식인 사회의 흐름을 조망해 본다.
▽정치학=정치학은 북한과의 대치 상황에서 한국 사회의 이념적 변화를 설명하고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 속에서 한국 정치를 바라보는 관점을 고수해 왔기 때문에 대체로 보수적인 관점이 주류를 이뤄 왔다. 1953년 설립된 한국정치학회와 1956년 창립된 한국국제정치학회 외에 아직도 별달리 다양한 학회의 활동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한국 정치학계의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 다만, 1980년대부터 한국 정치를 한국 또는 동양의 시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2000년 이화여대 박충석 명예교수를 중심으로 설립된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는 그런 노력의 가시적 성과다.
국내 정치 부문에서 서구의 정치학을 도입 소개한 제1세대는 일선에서 물러난 서울대 민병태 김영국 구범모 이홍구 김운태, 고려대 한배호 한승조, 연세대 이극찬 윤형섭 교수 등. 다음 세대는 고려대 최장집 임혁백, 서강대 손호철 교수 등 현재 학계 안팎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50대와 경희대 권만학 정진영, 상지대 서동만 교수 등이 잇고 있다.
국제정치 부문에서는 제1세대의 서울대 이용희 박봉식 손제석 노재봉 구영록 교수에 이어, 제2세대에 서울대 하영선 하용출, 고려대 한승주, 연세대 안병준 김달중 교수, 그 다음 세대에 서울대 윤용관, 연세대 문정인 함재봉, 가톨릭대 박건영 교수가 주목받고 있다. 특히 서울대 외교학과에서는 작년 퇴임한 김용구 명예교수와 장인성 교수를 비롯해 한국을 중심으로 국제관계를 보려는 연구가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한국의 정치학은 아직 미국 정치학의 영향권을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지만 1980년대부터 연구주제를 남북관계, 한미관계, 평화 등 한국 중심으로 바꿔가고 있다.
▽경제학=한국의 경제학은 미국의 영향을 크게 받은 한국 사회의 근대화와 함께 시작됐고 그 근대화를 뒷받침하면서 발전해 왔다. 미국 유학 1세대로 케인스 경제학 계열인 서울대 조순 변형윤, 고려대 이학용, 연세대 윤석범, 동국대 주종환 교수 등은 경제개혁에 정부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경제학계는 1980년대부터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최선으로 보는 신고전파 경제학이 확고한 주류를 형성한다. 이는 시카고학파가 주류를 형성한 미국 경제학계의 동향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이미 학계의 좌장 역할을 하게 된 서울대 정운찬 이승훈, 고려대 윤창호 이만우, 연세대 정창영 교수에 이어 다음 세대로 서울대 전영섭 이근, 고려대 전병헌 이종화, 동국대 배형, 홍익대 전성인, 단국대 강명헌 교수 등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현실 경제에 대한 이해 면에서는 제1세대보다 못하지만 이론적으로는 이전보다 훨씬 다양하고 깊이 있는 접근을 하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새 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유럽 유학파와 국내파들의 목소리도 커져 가고 있다. 이들은 한국 학계에서는 비주류지만 신고전파에 비해 분배를 강조하는 유럽의 학문 풍토를 익혔고 이것이 새 정부의 입장과도 일치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학자로 영국 옥스퍼드대 출신의 김대환 교수(인하대)와 장하원 전문연구원(한국개발연구원), 서울대 출신의 김상조 교수(한성대)가 있다. 미국 하버드대 출신인 한국개발연구원 유종일 교수와 경북대 이정우 교수도 새 정부의 경제정책에 관여하고 있는데, 이는 현실 정책을 중시하는 하버드대 학풍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사회학=제1세대는 서구와 일본을 통해 사회학을 한국 사회에 소개하고 근대화를 기치로 내건 정부를 지원한 서울대 이상백 최문환 이만갑, 고려대 홍승직 교수 등 이른바 ‘건국세대’다. 제2세대는 ‘4·19세대’인 서울대 한완상 김경동 김진균, 연세대 송복 박영신, 고려대 임희섭 교수와 그 뒤를 바로 잇는 서울대 임현진 한상진, 부산대 김성국, 한양대 전성우, 성균관대 양종회 교수 등. 이들은 마르크스주의, 종속이론, 아나키즘, 민족주의 등 다양한 이론을 국내에 소개하며 이를 국내현실에 응용했다.
‘민주화세대’라고 할 수 있는 다음 세대는 서울대 송호근, 고려대 박길성, 연세대 유석춘, 성공회대 조희연 김동춘, 한림대 성경륭, 경남대 이수훈 교수 등이다. 이들은 서구의 노동 및 산업사회학을 국내 노동문제에 적용하고, 서구의 발전이론을 한국 사회의 현실과 연결해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조희연 김동춘 교수를 대표로 하는 국내파 그룹은 80년대 사회운동의 와중에서 이른바 비판사회학과 한국 사회의 문제를 연결하고 있다.
그 다음 세대로 서울대 이재열, 연세대 김호기, 고려대 조대엽, 한림대 전상인, 한신대 김종엽, 상지대 홍성태 교수 등이 있다. 이들은 1990년대 중반 이후 문화와 시민사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다양한 각도에서 연구를 시도하고 있는 이른바 ‘포스트모던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이 밖에 사회학계에서 주목할 만한 학자군으로 사회사 연구 그룹이 있다. 서울대 신용하 박명규 교수를 비롯해 충남대 김필동, 전남대 정근식, 정신문화연구원 김경일 교수 등이 한국 사회사 연구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며 역사사회학 분야를 개척하고 있다. 현재 사회과학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지식인은 줄잡아 만여명에 이른다. 정권의 변동 때마다 수백명의 역량 있는 교수들이 현실 정치에 너무 깊이 뛰어들고 있는 것은 ‘한국적 현실’이자 극복해야 할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김형찬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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