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책]"필기 왜 하죠?” 뉴욕대생 조승연씨의 '공부기술'

  • 입력 2003년 1월 16일 17시 13분


/신석교 기자
/신석교 기자
조승연씨(22)는 ‘가방없는 대학생’이다. 강의실에 들어설 때면 옆구리에 피아노 악보 하나 달랑 낀 모습이다. 조씨는 뉴욕대(NYU) 스턴비즈니스스쿨 3학년생. 동급생들은 그를 ‘수재’ 취급한다. 펜 한 번 잡지 않는 그가 늘 상위권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지난 학기 그는 평점 4.0 만점에 3.6점을 받았다. 톱 5% 안에 드는 성적이었다.

어느 날 사회생활 경력을 인정받아 늦깎이로 입학한 동급생 스테판이 조씨에게 물었다. “넌 왜 필기를 안 하느냐?” “집중력이 없어서….” “너 나 놀리느냐?”

조씨는 동급생에게 ‘게임’을 제안했다. 성적을 올리고 싶은가? 그럼 절대 필기하지 마라. 처음엔 미쳤느냐며 고개를 젓던 친구는 “필기 내용을 달달 외워도 시험에서 0점을 받는 네가 더 잃을 게 뭐냐”는 조씨의 설득에 넘어갔다.

조씨처럼 맨손으로 강의에 들어온 첫 시간. 스테판은 온몸을 뒤틀어댔다. 필기 않고 강의시간을 버티는 것이 고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손가락을 꺾다가 팔과 다리를 흔들다가, 더 이상 도리가 없어졌을 때 ‘마침내’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두달 후 스테판은 처음으로 시험에서 40점을 받았다.

“필기하는 것이 강의를 경청하는 방식이라고들 생각하죠. 하지만 필기는 강의 정보를 이용해 강의를 건성으로 흘리는 걸 정당화하는 행위일 뿐입니다.”

최근 조씨는 자신의 이런 학습법을 정리해 ‘공부기술’이라는 책을 냈다. 그의 공부법은 반역적이다. ‘노트 정리 잘하고 문제집 많이 풀고 참고서 많이 보아야 한다’는 정석에 대해 단호히 “노”라고 말한다.

한국에서 중학교에 다닐 때까지 조씨는 ‘학습 부적응’이었다. 집중력과 인내심이 없어 단 5분도 책상 앞에 앉아있지 못했다. 그런 조씨가 터득한 공부기술의 핵심은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무엇을 공부할지 미리 계획하라’는 것. 그러려면 ‘왜 공부하는가’ ‘무엇을 모르는가’에 스스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

“필기는 안 하지만 수업 내용은 미리 읽어갑니다. 그때 내가 무엇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지를 파악해 두었다가 수업시간에 특히 그 부분을 강의하는 대목에서는 집중하죠. ‘가르치는 건 다 배우겠다’는 자세로는 결코 제대로 배울 수가 없어요. ”

조씨는 ‘꾸준한 반복학습’은 공부법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철학자 로저 베이컨이 말했듯이 좋은 습관만큼이나 나쁜 습관도 연습하기 때문이다.

“공부든, 운동이든, 피아노 연주든 자신을 잘 할 수 없게 만드는 요인부터 바로잡아야 합니다. 제대로 된 방법이 몸에 익으면 그 다음부터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가속이 붙죠. ”

조씨는 열일곱살에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리스트의 초절기교연습곡을 치고 싶어서였다. 자신의 ‘공부기술’대로 잘못된 운지법은 반드시 잡고 진도를 나가는 방법으로 다른 사람이 평균 5년 걸릴 코스를 1년에 마쳤다. 레슨을 맡은 줄리아드 음대 교수는 조씨에게 “3년 안에 초절기교연습곡을 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은령기자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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