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서울시립미술관장의 하소연

  • 입력 2003년 1월 16일 17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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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 하종현(河鍾賢·67) 관장은 15일 기자들에게 아예 작심한 듯 하소연했다.

“힘은 실어주지 못할망정 초장부터 기운을 빼면 어떻게 일하겠는가. 미술관 운영이 정상에 오를 때까지 만이라도 도와달라.”

그는 지난해 12월28일 시립미술관 사상 처음 공모로 낙점됐건만, 일부에서 심사의 공정성을 문제삼은 데다 민족미술인협회 등 6개 단체가 인선에 문제가 있다며 성명서까지 발표(10일)하기에 이르자 조바심이 난 듯했다.

“약장수로 비쳐도 할 수 없다”며 프랑스 르몽드, 피가로지 등에 게재된 자신의 기사와 도록을 펼쳐 보이면서 “내가 자질이 부족한 사람이 아니다”고 항변했다.

그에게서는 예술가라기보다 행정가라는 인상이 짙다. 홍익대 미대 학장과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시절 보여준 친화력과 마당발은 대단했다고 한다.

그에게 비판적인 사람은 바로 이 친화력을 문제삼는다. ‘하종현 사단’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주변에 사람이 많고 미협 이사장 시절에는 홍익대 중심으로만 운영진을 꾸려나가 재선에 실패한 주된 요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한 미술계 인사는 그가 관장이 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립미술관 사람들과 전시가 모두 홍익대 인맥이 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여기에 예순을 훨씬 넘겼다는 점을 들면서 ‘전문성과 개혁성보다는 서울시가 다루기 편한 인물을 골랐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정반대의 시각도 있다.

한 미술계 인사는 “이번 공모에 지원한 다섯 명 중 예술적 성취도나 행정력 면에서 하씨가 제일 무난하다”며 “그 정도 인사가 와야 서울시와의 조정이나 조직 장악력 면에서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평했다.

하 관장 인선 시비의 밑바닥에는 서울시와 미술관 직원들간 불신의 탓도 크다.

직원들은 “공무원들이 사사건건 간섭한다”고 불만이고 공무원들은 “미술관 직원들이 ‘서울시립’이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않고 마음대로다”고 투덜댄다. 지난해 민중미술 상설전시관 설치 문제 때 쌍방의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시립미술관이 제자리를 찾기 위해선 무엇보다 시의 역할이 중요하다. 행정적 지원은 아끼지 않으면서 전문경영인(CEO)의 자율성은 최대한 중시해 주는 이상적인 오너 역할을 기대해본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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