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박수근 미술관에 꿈의 '유화'가 걸린다

  • 입력 2003년 1월 16일 18시 05분


조재진씨가 박수근미술관에 기증하게 될 박수근 원작 유화 ‘빈 수레’.사진제공 조재진씨
조재진씨가 박수근미술관에 기증하게 될 박수근 원작 유화 ‘빈 수레’.사진제공 조재진씨
제대로 된 유화작품 한 점 없이 지난해 10월 박수근 화백의 생가가 있는 강원 양구에 문을 연 ‘국민화가’ 박 화백의 미술관(관장 유홍준)에 하나 둘씩 소장품이 모이고 있다. 가난과 고독 속에 죽은 후에야 명성을 얻게 된 화가의 예술혼이 작품을 불러 모으듯….

지난 성탄절 시인 이흥우씨(74)와 금성출판사 김낙준 회장(70)이 박 화백의 스케치 작품 등을 기증한 데 이어 ㈜영창 조재진 사장(56)이 박 화백의 유화를 기증하기로 함으로써 유화작품 소장이라는 ‘미술관의 숙원’을 이루게 됐다. ‘빈 수레’(20×31㎝)를 감정한 화랑협회는 작품의 감정가를 1억5000만∼2억원 가량으로 추정했다.

소문난 미술애호가인 조 사장은 10년전 지인을 통해 박 화백의 유화작품 ‘빈 수레’를 구입한 이후 묘한 인연의 끈을 느껴왔다고 한다. 조 사장 가족이 5대째 다니고 있는 교회가 박 화백이 말년을 보낸 창신동 달동네에 있었던 것.

조재진씨 부부

조 사장은 “그 곳 달동네 교회를 오를 때마다 ‘빈 수레’에서 느껴지는 생에 대한 비움, 초연함 같은 것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며 “하드 보드지에 황토색을 칠한 뒤 나이프로 저미듯 표현한 독특한 질감의 작품을 보면서 욕심없이 살다 간 화가의 체취를 느끼곤 했다”고 말했다.

최근 조 사장은 박수근미술관 개관전에 출품했던 소장품 ‘빈 수레’를 미술관에 기증하기로 결심했다. 미술계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어려운 결정을 했다. 유화작품 하나 없었던 박수근미술관이 제자리를 잡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그의 ‘결단’을 평가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조 사장은 “그림이 그저 갈 자리를 찾아갔을 뿐”이라고 계면쩍어 한다. 그는 “지난해 10월 박수근미술관 개관식에 갔다가 기금이 없어 고인의 유화 작품을 미술관에 한 점도 소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소장품을 ‘나 혼자만의 그림’으로 만들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기증 동기를 밝혔다.

조 사장은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인생을 압축한 듯한 ‘빈 수레’를 바라보고 있으면 빈손으로 왔다 가는 인생에 대한 묵직한 울림이 전해져 온다”며 “항상 곁에 두고 바라보던 딸을 시집 보내는 부모 심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업을 이어 연간 매출 70억∼80억원의 목재무역 및 제지회사를 운영하는 중소기업인이다. 결혼 이후 30여년간 부인과 함께 매주 수요일 인사동 갤러리 투어를 다닐 정도로 화랑가에서는 알아주는 미술애호가다. 화랑계 인사들은 조씨 부부가 “고미술과 현대미술에 두루 안목이 넓고 깊으며 미술품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모범 소장가”라고 전했다.

유홍준 관장은 “국민화가 박 화백답게 국민들의 성원으로 미술관이 하나하나 틀을 갖춰 나가는 듯해 반갑고 고맙다”고 말했다. 기증식은 17일 오후4시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19층 소연회장에서 열린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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