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해신 장보고’ 마무리 작가 최인호 기고

  • 입력 2003년 1월 17일 17시 50분


《KBS 신년스페셜 5부작 다큐멘터리인 ‘최인호의 다큐로망 해신(海神) 장보고’가 18일 오후8시 5부로 막을 내린다. 다큐프로그램의 평균시청률이 5% 미만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 프로가 회를 거듭하며 10%를 상회하는 시청률을 기록한 것은 놀라운 성과로 받아들여진다. 작가가 3년여의 발품과 특유의 상상력으로 학자들이 미처 해내지 못한 역사적 진실을 밝혀냈기 때문이다. 신라인 장보고를 ‘해상왕(海上王)’에서 ‘해신’으로 격상시켜 복원해낸 작가는 최근 다큐멘터리 방영에 맞춰 역사소설 ‘해신’(전3권·열림원)을 펴내면서 ‘해신 장보고’ 추적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소회를 담은 글을 본보에 보내왔다.》

▼“1200년전의 신라 선단 스페인 무적함대보다 막강”▼

장보고(張保皐)에 대한 소설을 쓰기 시작하겠다고 결심한 것은 3년 전부터였다. 그러나 막상 붓을 들었을 때 망설여지던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장보고가 우리나라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매력적인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삼국사기’에 기록된 대로 자신의 딸을 왕비로 맞아들이는 것을 신라의 귀족들이 반대하자 군사를 일으켜 모반을 꾀하였던 반역자였을지도 모른다는 또 한편의 오해 때문이었다.

장보고가 만약 정치적 야심을 지녔던 혁명아였다면 이는 개인적 야망을 이루기 위한 권력욕 때문이었으므로 그의 매력은 반감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우려는 막상 그의 발자취를 추적하기 위해 중국과 일본의 여러 곳을 답사하는 동안 말끔히 사라지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비참한 패배자였던 장보고가 오히려 일본에서는 신라명신(新羅明神)으로, 적산명신(赤山明神)으로 신격화되었음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대 최고의 시인이었던 두목(杜牧)은 장보고를 가리켜 최고의 영웅으로까지 극찬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특히 장보고 당대에 일본 최고의 고승 엔닌(圓仁)이 쓴 세계 3대 여행기 중 하나인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를 세계에 알렸던 라이샤워 전 주일 미국대사는 장보고를 ‘상업무역제국(Commercial Empire)’을 건설하였던 위대한 무역왕(Merchant Prince)로까지 묘사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 소설을 쓰면서 나는 이를 영상을 통해 방영하고 싶다는 욕망을 지울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소설은 활자매체여서 소설 ‘해신(海神)’을 쓰기 위해 답사할 때 느꼈던 현장의 감동을 생생하게 독자에게 전해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현장만이 지니고 있는 현실성은 오직 영상에 의해서만 리얼리스틱하게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KBS였다.

KBS는 마침 내게 다른 프로그램을 부탁하고 있었는데 나는 책임자를 만나 장보고를 다큐멘터리 작업으로 만들고 싶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는 장보고는 이미 국민이 다 알고 있는 사람이니 무엇이 새로울 것이 있느냐고 내게 반문하였으나 나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익숙하다고 아는 것은 아닙니다.”

장보고.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장보고라는 이름을 모르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 이름이 널리 알려져 익숙하다고 하더라고 우리가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은 지극히 단편적인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7개국 30만㎞의 대장정을 떠나게 되었는데 그 취재 여행 중에 있었던 잊을 수 없는 감동은 1200년 전의 신라가 아시아의 소국이 아니라 세계 속의 중심이었으며 특히 무역을 통해 바다를 개척하였던 장보고의 신라선단은 스페인의 함대보다 더 막강한 힘을 지녔던 무적함대였다는 점이었다.

장보고와 동시대를 살았던 이슬람의 세계적 지리학자 이븐 구르다시바는 신라를 ‘중국 동쪽에 있는 황금의 나라’이며 신라에서 수입한 물품을 ‘인삼, 비단, 자기, 돛, 검’ 등 20개 이상의 품목을 분명히 명기하고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장보고를 신격화시키고 있는 미데라(三井寺)의 비불 신라명신과 적산선원에서 신으로 모시고 있는 적산명신의 모습을 직접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던 것은 기적이라고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중국 대륙에서 장보고가 개척한 해상 루트에 존재하는 ‘신라초(新羅礁)’라는 바위섬을 발견하여 방영할 수 있었던 것은 특종이었으며 석가탑 내부에서 출토되었던 유향(乳香)을 오만의 사막지대 유향나무에서 채취하는 장면을 직접 촬영할 수 있었던 것도 나로서는 행운이었다.

21세기는 바야흐로 경제적 무한 경쟁시대, 이러한 시기에 패자부활전을 통해 다시 우리 곁으로 살아 돌아온 장보고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미래상을 분명히 제시해주고 있는 것이다.

장보고가 보여주었던 치밀한 조직과 정보의 활용, 변화에 대한 신속한 대응과 우수한 기술을 받아들여 새로운 상품을 개발해내는 창조적 경영활동이야 말로 우리의 기업들이 본받아야 할 경영마인드가 아닐까.

그리스의 철인 소크라테스는 말하였다.

“나는 아테네인도 아니고, 그리스인도 아니고, 나는 세계의 시민이다.”

장보고는 1200년 전에 벌써 ‘청해진인도 아니고, 신라인도 아니고, 위대한 세계 시민’이었던 것이다.

나는 특히 우리의 젊은이들이 장보고처럼 세계 시민으로 성장해주기를 바란다. 작은 도시 국가였던 그리스는 강력한 해양국가가 됨으로써 서구문명의 꽃을 피운 찬란한 보석이 될 수 있었다. 그들은 지중해를 지배하여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의 신화를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장보고는 우리의 다도해를 제패하여 우리 민족에게 유일한 바다의 신화를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감히 장보고를 바다의 신, 해신이라고 부른다.

최인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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