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선비들이야 의관(衣冠)의 핵심인 갓을 목숨처럼 여겼다지만 지금은 박물관 또는 사극(史劇), 한복 패션쇼에서나 갓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일상생활에서 쓰기 위해 갓을 구입하는 사람은 지리산 청학동 선비들 정도다. 이 때문에 갓을 만드는 사람도 명맥만 이어지고 있다. 현재 박씨처럼 완성된 갓을 만들 수 있는 입자장은 대한민국에 두 명뿐. 그나마 실제 갓을 만들어 파는 일을 하는 사람은 박씨가 유일하다. 다른 사람은 전업(專業)으로 하지 않고 가끔 작품으로 만들 뿐이다. 박씨는 그래서 과거라면 4명이 해야 할 몫의 일을 혼자서 해치워야 한다.
그의 고향인 경북 예천 돌티마을은 그가 어렸을 적만 해도 80가구 가운데 절반 이상이 갓을 만들던 전통적인 ‘갓 마을’이었다.
“갓 한 개에 쌀 5가마니였으니 벌이가 좋았죠.”
갓은 100% 수작업으로 손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기 때문에 공임(工賃)이 높아 고민 없이 가업을 잇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TV 사극용 납품이 없으면 생계를 이어가기 어렵다. ‘태양인 이제마’나 ‘명성황후’, ‘장희빈’ 등 사극에 나온 갓은 모두 박씨의 작품들이다. 소품이긴 하지만 주인공과 엑스트라의 갓은 수준차가 많다고 한다. 극중 ‘지체 높은’ 주인공이 쓰는 갓의 가격은 수십 만원을 훌쩍 넘고 만드는 데도 며칠씩 걸린다.
40년 넘게 갓 만드는 데만 매진하며 가업을 이어 온 박씨의 짐은 이제 아들 형박(炯璞·29)씨가 나눠 지고 있다. 홍익대 대학원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는 그는 6년 전부터 5대째 가업을 잇겠다고 자청해 2001년에는 문화재청이 지정하는 전수 장학생으로도 뽑혔다.
힘든 길이라며 처음엔 아버지가 말렸지만 아들은 “지켜야 할 소중한 전통인데 끊어지게 할 수 없다”며 오히려 아버지를 설득해 가업을 잇고 있다. 역시 미술을 전공한 동생 형언(炯彦·27)씨도 형을 돕겠다며 4개월 전부터 틈틈이 ‘갓일’을 배우고 있다.
형박씨는 자신의 실력에 대해 “기본적으로 갓 모양을 잡을 수는 있지만 아직 멀었다”고 말한다. 갓의 양태(차양 부분)를 인두로 둥글게 구부려 갓의 균형과 형태를 잡아내는 ‘트집잡기’ 과정을 제대로 하려면 10년을 꼬박 배워야 할 만큼 갓일이 섬세하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 배울 때 양반다리를 하고 내내 앉아 있는 것이 가장 힘들었지만 이젠 앉으면 몇 시간 정도는 꼬박 작업을 할 수 있게 단련됐다며 자랑한다. 아버지 박씨도 “미술을 해서인지 손재주가 있다”며 흐뭇해 한다.
“6대째도 이어갈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이들은 “자손들의 몫”이라고 입을 모은다. 사회는 숨가쁘게 변해 가고 있지만 ‘그래도 지켜 나가야 할 뭔가’에 이들은 거리낌없이 삶을 걸고 있다.
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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