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사태’ 끝에 총무원장직에서 물러난 의현(義玄·67) 스님과 지난해 말 동국대 이사장직에서 물러난 직지사 회주 녹원(綠園·75) 스님의 사례는 한국 불교 사판(事判·행정)의 세대교체를 상징하는 ‘일대 사건’이다. 두 스님은 비구승이 대처승을 몰아내던 정화운동(54∼62년)을 이끈 세대이기 때문이다.
화운동 세대’는 광복 이후 불교를 비구승 중심으로 확립하는 데 공헌했지만 부정적인 측면도 없지 않다. 대처승이 모두 절에서 쫓겨나 비구승이 적을 때다 보니 정화의 선봉에 섰거나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승려들이 각 절이나 중앙의 주요 소임을 맡았고 94년까지 조계종의 중심세력을 형성했다.
94년 의현 총무원장을 몰아낸 조계종 사태는 바로 이들 ‘정화운동 세대’와 ‘정화 이후 세대’간의 갈등에서 촉발된 것이다. 당시 개혁세력의 주축은 선우도량의 도법(道法·54) 수경(收耕·54) 현봉(玄峰·53) 영배(英培·51) 학담(鶴潭·51) 정념(正念·47), 선우도량과 실천불교승가회에 동시에 몸담았다 선우도량 쪽으로 기운 명진(明眞·53) 지홍(至弘·51) 현응(玄應·48), 실천불교승가회의 지선(知詵·57) 청화(靑和·59) 법안(法眼·43), 그리고 영담(影潭·52) 스님 등 현재 40, 50대 승려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정화운동과 그 후유증이 가신 이후 출가했다. 청화는 64년, 도법은 65년, 영담 수경 영배는 66년, 지홍 학담은 70년, 현응은 72년, 명진은 74년에 출가했다. 혼란기를 살았던 정화운동 세대에 비해 비교적 체계적인 교육을 받고 성장했다.
도법 스님은 90년 젊은 스님들의 수행단체인 ‘선우도량’을 만들어 불교개혁의 선두에 섰고 98년 말 조계종 내분 때 총무원장 권한대행을 맡아 분규를 마무리지은 뒤 실상사로 내려가 생태공동체를 꾸려가고 있다. 수경 현응 스님은 불교환경운동을 이끌고 있다. 영담 스님은 불교신문사장을 맡고 있다. 지홍 스님은 서울의 총본산인 조계사 주지이고, 청화 스님은 중앙종회 부의장이다. 영배 스님은 동국학원의 최연소 이사로서 활약하고 있고 학담 스님은 남북 불교의 교류에 열정을 쏟고 있다.
이들은 승랍을 존중하는 전통에 따라 전면에 나서지는 않고 있다. 대신 정화운동 세대에 속하지만 의식이 남달랐던 금산사 회주 월주(月珠·68) 스님이나, 계파간 조정력이 뛰어난 정대(正大·66) 스님을 총무원장으로 내세웠다. 새 총무원장 후보는 서울 관음사 주지 종하(鍾夏·64), 예산 수덕사 주지 법장(法長·62), 부산 내원정사 주지 정련(定鍊·61) 스님이 거론되고 있다. 정화운동 세대 중에서도 정화 이전 출가한 리더그룹에 비해 정화 당시 출가한 60대에는 특히 인물난이 심하다. 그렇지만 현재 50대가 대부분인 교구본사 주지들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아직 50대 총무원장은 ‘시기상조’라는 것이 중론이다.
중앙과 달리 교구본사의 경우 전국 5대 총림에 원로급 방장들이 자리잡고 있고 경북 김천 직지사 쪽은 녹원, 강원 신흥사 쪽은 오현(五鉉·61) 스님 등 노장들이 회주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경주 불국사의 종상(宗常·55), 보은 법주사의 지명(之鳴·55) 스님 정도가 50대 주지로서 실세 역할을 하고 있다. 법등(法燈·55) 스님은 직지사의 힘을 배경으로 중앙종회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판(理判·수행)의 세계는 선방에서 묵묵히 수행하는 수좌들로 그 전통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광복 이후 선풍을 드높인 것은 성철(性徹) 스님의 ‘봉암사 결사’ 세대다. 종정 법전(法傳·78) 스님은 봉암사 결사에 참여한, 살아 있는 마지막 세대다. 전남 백양사의 서옹(西翁·92), 경북 봉암사의 서암(西庵·85), 서울 화계사의 숭산(崇山·76) 스님 등은 선사(禪師)의 반열에 올라 있고 그 뒤를 이어 부산 해운정사의 진제(眞際·69), 경북 봉화 각화사의 고우(古愚·66), 대구 은해사 기기암의 적명(寂明·64), 봉화 축서사의 무여(無如·62) 스님과 약 10년을 건너뛰어 제주도 남국선원의 혜국(慧國·54), 전남 송광사의 현묵(玄默·52) 스님 등이 선맥(禪脈)을 지키고 있다.
포교쪽에서는 산중(山中)불교의 통념을 깨고 도시에 진출해 문화 포교로 큰 성공을 거둔 양재동 구룡사와 경기 일산 여래사의 정우(頂宇·52) 스님, 해직 언론인 출신으로 늦깎이 출가한 서울 서초동과 포이동 능인선원의 지광(智光·53) 스님 등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들 사찰은 강남에서 성장한 개신교의 대형교회를 연상케 한다.
학승의 세계에도 세대교체의 바람이 불고 있다. 가산불교문화연구원장 지관(智冠·71), 길상사 회주 법정(法頂·70) 스님 등의 뒤를 쌍계사 강주 통광(通光·63), 조계종 교육원장 무비(無比·58), 중앙승가대 총장 종범(宗梵·58) 스님 등이 잇고 있다. 인도 유학을 거쳐 영국 옥스퍼드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하버드대에서도 연구한 백양사 참사람수련원장 현광(賢光·45) 스님, 산스크리트어 불경을 국내에 소개하는 초기불전연구원 지도법사 각묵(覺默·46) 스님 등은 탄탄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40대 승려들이다.송평인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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