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바둑 기사 김승준 7단(31)과 본보 바둑담당 기자의 대담을 통해 최근 화제가 된 대국의 승부처를 진단하고 한 수 한 수에 깃든 대국자의 심리도 살피는 ‘김승준 7단의 결정적 장면’을 격주 1회 연재합니다. 김 7단은 지난해 농심배 세계연승최강전 한국 대표로 선발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중견 기사입니다.》
▽기자=최근 바둑계의 화제는 조훈현 9단이 삼성화재배에서 중국의 왕레이 8단을 꺾고 우승해 대회 2연패를 달성한 것이겠죠. 1, 2국을 정리해주시면….
▽김 7단=그렇습니다. 조 9단은 역시 큰 대회에 강합니다. 1국에선 역전승을 거뒀고 2국은 복잡한 싸움 속에서도 간발의 리드를 지켜내 승리했습니다. 재미있는 건 2국의 형세를 놓고 프로들끼리 의견이 엇갈렸는데요. 이세돌 3단은 초반 흑이 덤만큼 불리하다고 단언했는데 중국 현지나 국내 검토실에선 흑이 좋다고 판단했거든요. 일류 프로들도 형세를 보는 눈은 조금씩 다릅니다.
▽기자=어디가 승부의 갈림길이었는지 알아보죠.
▽김 7단=장면 1도를 봅시다. 좌변 전투가 끝난 시점인데 흑1 때 백2가 의문이었습니다. 너무 서두른다고 할까요. 백은 중앙과 우변이 두텁기 때문에 ‘가’로 벌려두는 것이 유연했습니다. 세계대회 결승전에 처음 진출한 왕 8단은 승부를 빨리 결정지으려는 조급함 때문인지 서두르거나 무리하게 버티는 수를 두다가 자멸했습니다. 원래 왕 8단은 좀 불리하더라도 끈적끈적하게 따라붙는 바둑인데 이번에는 너무 의욕이 앞섰어요.
▽기자=흑3의 강타를 예상 못한 탓도 있겠지요.
▽김 7단=이것이 조 9단 바둑의 매력입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카운터 펀치를 날리는 순발력과 감각은 발군입니다. 보통 ‘나’로 가운데를 째는 것이 보통이지만 조 9단의 바둑엔 이런 느슨한 수를 찾아볼 수 없죠.
▽기자=우변 전투에서 백이 마지막 찬스를 놓쳤다는데…
▽김 7단=불리한 백이 혼신의 힘을 다해 반격을 가한 장면입니다. 백의 승부수가 성공하지 않았나 싶은 순간이었는데요. 실전에선 백이 장면 2도 4의 곳(152수)을 두었는데 이게 안 좋았습니다. 이 수로는 백1로 끊어야 했습니다. 백5까지 흑 석점을 잡으면 일단 성공한 모습입니다. 물론 대국 뒤에 흑에게도 6의 묘수가 있다는 것이 발견됐어요. 보면 볼수록 좋은 수입니다. 아마 조 9단도 이 수를 보고 있었을 겁니다. 그래도 백은 장면 2도처럼 처리했으면 약간 불리하지만 따라갈 여지는 있었는데요. 백152로 둔 이후 바둑이 끝나버렸습니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 장면 1도
▼ 장면 2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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