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한 음악지에서 ‘한국 연주가들이 가장 자주 연주하는 작품’을 조사한 일이 있다. 그때 실내악 분야에서 당당히 1위에 오른 작품이 프랑크의 A장조 소나타였다. 음악기자의 기억으로도 이 작품은 분명 가장 많이 연주되는 곡 중 하나다. 바이올린 뿐 아니라 첼로, 플루트용으로도 곧잘 편곡 연주된다.
이해하기 힘든 일은, 애호가들의 입장에서는 이 작품이 실내악 인기 1위곡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연주자들이 유난히 좋아하는 것이다. 이유가 뭘까. 한 플루티스트는 “잦은 조바꿈이 이 작품에 각별한 매력을 더해준다”고 말했다. 분명 보통의 감상자들에게는 쉽게 와닿지 않을 얘기다. 그러나 프랑크의 조바꿈은 분명 단순히 음계가 바뀐다는 것을 떠나 다른 차원의 정신들이 접합하고 교감하는 듯한 특별한 차원의 경험을 제공한다.
이 작품의 추천음반은 아날로그시대 정경화·피아니스트 라두 루푸의 협연음반 (데카·1977년 녹음)과 디지털시대 김지연·피아니스트 에구치 아키라의 음반 (덴온·1994년 녹음) 이다. 어라, 사방에서 눈총이 쏟아지는 것 같다. ‘세계화시대에 국수주의는 바람직하지 않다’ 라는 질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좋다. 그래도 이 곡에 있어서만은 ‘코리아 넘버 원’이 소신이다. 기자가 김지연의 모든 음반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두 곡만 꼽으라면 이 작품과 생상스의 협주곡 3번을 들겠다. 그리고 단언컨대 그 둘은 ‘엑스트라 스페셜’ 급이다.
정경화의 프랑크는 청초하다. 물기를 흠뻑 머금은 듯한, 품위있는 비브라토 (떨림)를 지닌 매력있는 음색으로 느릿하게 접근한다. 루푸의 피아노도 절제돼 있다.
반면 김지연의 프랑크는 풍요하다. 특유의 낭랑하고 건강한 톤으로 당겼다 늦춰주면서 마음을 빼앗는다. 최후의 코다(맺는 부분)를 향해 템포를 바짝 조인 채 달려가는 부분에서 그는 말하는 것 같다. “나는 살아있다. 내일은 더욱 아름다울 것이다”라고.
김지연 혼자 따낸 성취는 아닐 것이다. 에구치 아키라의 반주부는 때론 노도와 같이 휩쓸려가고, 때로는 구슬같이 더없이 잔잔한 톤으로 흘러가면서 김지연이 지어내는 작품의 기복에 좋은 보조가 되어준다. 활에 조명이 닿아 반짝 빛나는 듯한 투명한 녹음의 질도 더할나위 없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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