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이라 값이 두 배로 비싸네요. 보통 오이는 4개에 1800원인데 여기는 2개에 그 값이니…. 그래도 몸에 좋다니 한 번 사 보는 거지요.”
17일 문을 연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지하의 ‘스타슈퍼’. 타워팰리스 입주민 등 지역 주민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
매장 면적 950평, 계산대가 7개에 불과하니 요즘 같은 대형 할인점 시대에 규모만으로는 ‘꼬마’ 슈퍼마켓이다. 그러나 “비싸도 건강에 좋거나 단 한 명이라도 외국에 살다 온 사람이 찾는 식재료라면 구비해 놓는다”(임대환 식품 매입 총괄 부장)는 매장 구성의 원칙에 따라 진열대에 놓인 내용물은 인근 대형 백화점 식품매장과도 사뭇 다르다.
“무엇을 먹는다는 것은 단지 배를 채우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내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주는 행위다.”(인류학자 시드니 민츠)
스타슈퍼 진열대에서 드러나는 한국인들의 ‘먹고 싶은 욕망’의 현주소는?
● 신선, 자연산이 화두
매장에 들어서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벽면을 끼고 진열된 신선식품 코너들. ‘Fresh Fruits’ ‘Fresh Vegetables’ ‘Fresh Meat’ ‘Fresh Fish’ 같은 파란색 간판 밑으로 ‘특별히 공급된’ 먹을거리들이 진열돼 있다.
육류코너에서 파는 특선 고기들은 대부분 사육 과정에서 항생제를 먹이지 않은 것들이라고 한다. 일례로 ‘스타’ 쇠고기에 관해서는 ‘강원 화천군 한우목장에서 약 35개월 동안 독방에서 키운 암소에서 나온 고기’라는 안내판이 붙어있다. 소가 떼로 사육되면 먹이를 놓고 다툼을 벌여 스트레스를 받거나 질병 전염을 막기 위해 항생제를 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목장에서는 일본 유명 고기회사의 노하우를 전수받아 두부와 맥주 찌꺼기로 만든 특별 사료를 먹인다는 것. 스타슈퍼에서 팔리는 일반 한우는 100g에 8700원이지만 ‘스타’ 쇠고기는 9200∼9600원으로 약 10% 비싸다. 축산 매입담당자인 이종묵 과장은 “일반 한우와 스타 한우의 매출 비중이 반반 정도”라며 “기대했던 것보다 더 잘 나가는 편”이라고 말했다.
닭고기도 마찬가지. 충북 옥천과 음성의 야산에서 놓아 길렀다는 닭들이다. 항생제 대신 한약 찌꺼기를 먹였다는 설명도 따라 붙는다. 마리당 1만2000∼1만5000원에 팔린다. 이들 닭이 야산에 낳아 놓은 달걀(유정란)은 일일이 농장 일꾼들이 주워서 짚으로 엮어 매장에 내놓은 것이란 설명이다. 12개들이 한 판에 6000원으로 보통 달걀보다 약 4배 비싸다.
돼지고기도 지방이 골고루 분포돼 맛이 고소한 흑돼지와 듀록종 암퇘지의 고기가 진열돼 있다. 두 종자는 일반 돼지 보다 성장이 느린 대신 육질이 좋은 편.
과일 코너에는 유기농 등 이른바 친환경 과일과 일반 과일이 5 대 5 비율로 섞여 있다. 딸기의 경우 크기가 아기주먹만 하고 과질이 단단하며 당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진 이스라엘 종자를 수입해 전북 남원에서 농약을 치지 않고 키운 것이라고 한다.
채소 코너에서는 팔당상수원보호구역에서 무농약으로 재배한 야채와 생산하자마자 냉장 보관해 신선도를 유지한 ‘예냉 야채’가 팔리고 있다.
반찬코너에 있는 김치는 고춧가루 배추 등 모든 재료를 유기농으로 기른 제품으로 담근 것을 들여왔으며 도라지 나물반찬 등에도 인공조미료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슈퍼측의 설명. 쌀 잡곡류 코너에서 파는 현미는 소비자가 즉석에서 도정기계를 이용해 ‘9분도, 7분도’로 깎아갈 수 있다. 몸에는 좋지만 입안에서 씹히는 까끌까끌한 맛을 없애기 위한 것이다.
점심시간이 되자 가장 붐비는 곳이 테이크 아웃 코너들이다. ‘피시 델리’ 코너에서는 2만원이 넘는 병어 미소구이나 가리비 치즈롤, 메로 미소구이 등을 취급하고 있으며 ‘차이니즈 델리’에서는 칠리소스 새우 등을 판다. 판매원들은 소비자들에게 “‘스파슈퍼’ 내 수족관에서 당일 아침에 잡아 만든 것들이라 비싸다”고 설명했다.
● 외국 생활자의 입맛을 맞춘다
매장 운영을 담당한 신세계백화점 측은 공산품 코너를 구성하며 “70 대 30을 30 대 70으로 역전했다”고 설명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식품매장을 기준으로 전체 공산품 식재료의 30%를 차지했던 외제 비중을 70%로 늘렸다는 것.
임대환 식품매입총괄부장은 “소스나 향신료를 구하기 위해 외국여행까지 다녀오는 소비자들을 타깃으로 현지에서 잘 팔리는 1, 2위 제품은 모두 구해 팔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이 스타슈퍼의 충성도 높은 고객이 될 것이라고 분석하기 때문이다.
수입품 가운데는 특히 일본 소스 카레 장류 면류 등이 다양하게 포함돼 있다. 일본 베이커리 브랜드 ‘에구치’를 한국에서 운영하는 문송숙 사장은 “일본에서도 지난해 여름에 막 나온 드레싱 제품이 진열돼 있어 깜짝 놀랐다”며 “각종 소스와 드레싱을 사러 일본까지 갈 필요가 없게 됐다”고 말했다.
일본의 각종 요리경연대회에서 우승한 사람의 얼굴이 들어간 깨, 간장, 프렌치 드레싱이나 일본 간장, 나토 등이 제품별로 수십 가지 진열돼 있다. 나토는 3개 들이에 3000원으로 일본보다 100엔(약 1000원)가량 비싸지만 관세를 감안하면 이해할만 하다는 게 이용자들의 말.
스파게티 면과 소스도 다양하다. 모양도 제각각인 스파게티 면이 80여종 있다. 고기나 생선을 구울 때 갈아서 얹는 향신료가 베이질, 로즈마리, 타라건, 시나먼 등 50종 이상 진열돼 있으며 최상급 올리브오일이나 유럽 등지에서 들여온 유기농 가공식품도 많다.
와인은 700여종과 유럽산 명품 치즈가 갖춰져 있다. 치즈 코너에는 ‘트러플’과 고급 식재료인 ‘캐비아’‘푸아그라’가 전시돼 있다. 땅 속에서 영근 감자모양의 버섯인 트러플은 오일 또는 향신료로 가공돼 선보인다. 오일 55mL에 1만∼1만1000원, 향신료는 35g에 1만8000∼ 4만7000원. 캐비아는 30g에 9만9000∼22만원이며, 거위간인 푸아그라는 180g에 15만9000원.
서초동에서 쇼핑 나온 40대 초반의 주부는 “다른 매장에서는 한 번 쇼핑한 뒤 다시 한 번 장을 봐야했는데 여기서는 값은 비싸지만 원하는 게 한꺼번에 다 있어 좋다”고 말했다.
● 경적 소리 없는 매장
매장의 구성은 고객이 들고나기 자유롭게 돼 있다. 쇼핑 카트는 아래 위 두 칸으로 나뉘어 있어 계산원이 자칫 아래 칸을 못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백화점이나 할인점에서 바코드 찍힌 물건을 계산하지 않고 갖고 나갈 때 울려 퍼지던 경적음이 이곳에는 없다. 임대환 부장은 “일본에서는 감시나 통제가 없어도 물건을 그냥 들고 나가지 않는다”며 “스타슈퍼에도 그런 문화를 정착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스파슈퍼에는 타워팰리스 입주민이 아니더라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그러나 개장 때 할인쿠폰을 받은 고객은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의 VIP 고객들이었다. ‘스타슈퍼’측은 앞으로도 VIP를 특별 관리하는 마케팅을 지속할 계획이다. 예를 들어 VIP 고객이 와인을 집에 보관하기 곤란할 때는 와인 저장고 한 구석에 따로 마련한 개인 와인 보관함을 무료로 내줄 예정이다. 개인 와인 보관함은 한 칸에 25병까지 들어가며 현재 36개가 있다.
‘스타슈퍼’에서는 세제류, 생활용품은 어디에 있는지 찾기 어려울 정도로 비중이 적다. 명창진 부지점장은 “국내 최고급 식품 전문관을 추구하기 때문에 동네 슈퍼마켓에서도 구할 수 있는 물건보다는 여기서만 살 수 있는 제품의 비중을 높였다”며 “며칠 운영해본 결과 타워팰리스 입주자는 물론 강남구 일대, 강동 송파구 주민까지 다녀간 것으로 파악됐으며 매출이 기대 이상이다”고 말했다.
하임숙기자 artemes@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