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숭동 대학로 ‘통일문제연구소’(소장 백기완)는 추운 겨울에 집수리가 한창이다. 1990년 연구소가 문을 연 지 13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집수리는 3년 전부터 터져 못 쓰던 보일러를 고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집을 뜯고 보니 기둥 6개의 밑동이 모두 썩었고, 2층을 지탱하던 대들보가 반쯤 갈라져 있었다.
“선생님, 자칫하면 오징어포 되실 뻔했습니다.”
공사를 맡은 이가 던지는 말에 백 소장은 “허허, 참” 하고 웃을 뿐이었다.
이번 집수리는 5일 방영된 KBS1 ‘TV는 사랑을 싣고’에 출연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날 취재하러 온 안혜진 작가는 영하 10도의 날씨에 냉골에서 지내는 백씨와 인터뷰를 진행하다가 그만 눈물을 쏟았다. 안 작가와 MC인 개그맨 김미화씨는 그 뒤 “백 선생님께 보일러를 놓아드리자”며 모금 운동을 펼쳐 1200여만원을 모았다.
최근 백 소장은 ‘통일 운동’의 알짜(실체)를 소개한 ‘백기완의 통일이야기’(청년사)를 출간했다.
백 소장은 8명의 가족이 4명씩 남북으로 갈려야 했던 가족사의 비극과 민초들의 지혜가 담긴 토속이야기를 구수한 입담으로 풀어내 분단의 아픔과 통일의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책에서 그는 ‘통일’을 단순한 민족의 재결합이 아니라 잘못된 세계질서를 깨뜨리는 ‘의식혁명’이요, 올바른 세상을 새롭게 빚어내는 ‘문명사적 한판 뒤집기’라고 말한다.
그리고 백 소장은 통일 이후의 세상에 대해 사회과학적 이론 대신 ‘노나메기’와 ‘맘판’이라는 우리민족 고유의 공동체적 건강성을 제시한다. ‘노나메기’ 세상은 너도나도 모두 ‘올바로’ 잘사는 곳이고 통일은 흥겨운 굿판의 신명처럼 이 땅별(지구)을 어질고 넉넉한 사람의 ‘맘판’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그는 “통일이 될때까지 여생은 통일의 거대한 강물에 ‘한방울 이슬’로 띄워보내겠다”고 말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하나도 남김없이….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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