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6일부터 서울 동숭동 대학로 알과핵 소극장에서 공연되는 ‘붓다를 훔친 도둑’(극단 예삶)의 작가인 원철 스님(충남 한암사 주지·45).
스님이 쓴 대본이 대학로에서 정식 연극으로 만들어진 것도 드문 일이지만 그는 이 바닥에서 꽤 알려진, 이색적인 인물로 통한다.
86년 부산 범어사로 출가한 그는 92년 극단 신시의 김성렬씨(작고)를 알게 되면서 연극계에 발을 들여놨다. 발을 들여놨다기보다 그저 연극이 좋아 배우와 연출자들을 쫓아다니고 같이 어울리면서 연습 장면을 지켜본 것.
그는 한때 ‘대학로의 산타클로스’라는 별명도 얻었다. 궁핍한 연극계 사정에서 보면 그는 그나마 주머니가 두둑한 편이었고 연극인들의 밥값 술값을 아끼지 않고 내주었다. 심지어 있는 돈 없는 돈 탈탈 털어 집세까지 내준 적도 있다.
“아마 그 돈을 다 모으면 몇천만원은 될 겁니다. 돈 마련하느라 염불도 열심히 했죠.”
그는 96년 열린문학 가을호에 시로 등단했으며 97년 시집 ‘광대’를 펴냈다. 비록 군소 문학상이긴 하지만 황희문화상과 충헌문화예술상 시 부문에서 수상을 하기도 했다.
시집을 낸 전후로 그는 연극 대본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엔 연극 대본의 ABC도 몰랐죠. 2∼3년간 대본을 고치고 다듬어 안면 있는 연출가에게 보여주면 ‘이걸 대본이라고 썼느냐’는 핀잔만 들었어요. 그 후로 3년간은 아예 글이 안 써졌어요. 그래서 죽자살자 연극 관련 책을 비롯해 수천권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글이 터지더니 이틀 만에 ‘붓다를 훔친 도둑’의 골격을 잡고 일주일 만에 다 써버렸습니다.”
연출가 송미숙씨는 “대본을 처음 봤을 때 극의 구성과 흐름은 조금 약했지만 등장인물의 성격이 펄펄 살아있었다”며 “조금만 다듬으면 되겠다는 생각에 일단 무대에 올리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15번의 수정작업을 거쳐 최종 대본이 완성됐다.
‘붓다를 훔친 도둑’은 노스님 운학이 도둑질에 천부적인 재질을 갖고 있는 말구를 부처님 품으로 끌어들이고자 절에 있는 수월관음도를 훔치자고 꼬여 절로 데리고 들어온 뒤 우여곡절 끝에 진정한 불제자로 만든다는 코믹성 줄거리.
출연 배우진도 만만치 않다. 연극계의 터줏대감 이호재씨를 비롯해 국립극단 단원 2명과 중견배우들이 참여했다. 이들의 열성도 대단하다. 이씨는 좋아하던 술을 두달 전부터 끊고 연습에 전념하고 있으며 스님으로 출연하는 남자 배우들은 21일 서울 조계사에서 모두 삭발을 했다.
원철 스님은 “배우 중에 교회 집사도 있었는데 연극을 위해 선뜻 삭발을 하겠다고 나서 고마울 따름”이라고 했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다음엔 비극을 쓸 겁니다”고 말했다. 이미 그의 머릿속엔 다음 작품 구상으로 꽉 차있었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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