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도 현실사회주의의 붕괴에 즈음해 ‘역사는 끝났다!’라고 선언함으로써 세인의 주목을 끌었던 미래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저서다. ‘역사의 종언’ ‘트러스트’ ‘대붕괴 신질서’에 이어 국내에 소개되는 그의 네 번째 저작이다.
이 책은 생명공학 기술의 위험과 이에 대한 효율적 통제 방식에 대해 현실적 처방을 제시한다. 그는 생명공학 기술이 인간 사회와 인간 본성을 파괴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에, 국가권력을 통해 통제해야 하고, 국가적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라면 국제적 통제기구를 만들어 통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한다.
그러나 도대체 기술이 통제될 수 있을까? 후쿠야마는 “가능하다”고 대답한다. 기술통제의 성공사례들을 제시하면서 기술은 통제 불가능하다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잘못된 통념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기술의 역사에 비춰 보면 명백히 ‘반사실적 논리’다.
그러므로 핵확산금지조약과 같은 생명공학기술 금지조약을 체결하고, 이를 감시하는 국제통제기구를 설치하는 등 미국 중심의 세계정치의 틀 내에서 문제 해결을 시도할 것이 아니라, ‘도덕의 진화’에서 해결책을 찾는 것이 훨씬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생물학적으로 보면 도덕 역시 진화의 산물이며, 도덕적이고자 하는 유전자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한, 인간은 보다 행복해지고자 하며 선하고 옳은 행위를 선택하고자 할 것이기 때문이다. 복제 인간도 보통 사람과 더불어 사는 한(윤리는 사회적 구성물이므로!), 도덕 유전자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복제인이 지구 인구의 절반이 넘는 ‘신인류의 사회(post-humane society)’에서도 도덕 유전자의 강력한 ‘이기심’은 좀처럼 도태되지 않을 것이다.
엄청난 저항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술은 반드시 성취됐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모든 기술적 성취는 오직 기술에 대한 도덕적 반성과 저항의 역사 위에서만 가능했다. 이것이 도덕의 진보를 증명한다. 생명의 연금술사들 역시 도덕유전자를 가진 인간인 한, 생명공학 기술이 인간 본성을 파괴할 것이라는 주장은 자기모순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생명공학 기술의 상업화는 부잣집 아이들이 좋은 유전자를 더 쉽게 입수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지식과 권력의 독점이 반영구적이 될 것이며, 그래서 사회는 반자유주의 체제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걱정한다.
그러나 그는 4년 전 저서에서 “인간의 본성은 변화된 환경에 부응하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냄으로써 사회를 유지시키고 사회적 조화라는 과제를 해결하며 개인의 선택을 제약하는 도덕규칙을 만드는 타고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술 진보로 현대 세계가 설령 타락과 무질서에 빠져 있다 하더라도 분명 다시 회복될 것”(‘대붕괴 신질서’)이라는 낙관론을 제시했다. 이는 이번 책과 완전히 상반된 견해였다.
또한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새로운 질서를 재생산하는 공간이며, 자본주의는 사회의 도덕적 문화에 긍정적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자본주의 스스로 사회적 자본을 생산할 것이므로 자본주의의 진화에는 문제없다’라든가, ‘역사는 사회 문화적 측면에서 몇 세대를 단위로 순환한다’(’대붕괴 신질서‘)고 말함으로써 10년 전 ‘역사의 종언’에서 제기한 자신의 역사관을 뒤집기도 했다.
이처럼 책을 낼 때마다 말을 바꾸는 이 사람의 책이 국내 독자들에게 주목받는 이유는 아마도 그가 철학적 논변으로 논증하고 정당화하는 골치 아픈 논객이 아니라,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의 건강한 결합으로 역사는 끝났다’ (‘역사의 종언’) 라든가, ‘신뢰에 기초해서 각국의 경제를 문화적 척도로 분석한 후, 안정된 민주주의와 문화라는 사회적 자본이 튼튼한 나라가 시장의 진보를 가져온다’(‘트러스트’) 등 거대한 토픽을 ‘황당’하리만치 단순화시키는 능력, 그리고 인류의 미래에 대한 상식적 경구를 동원함으로써 독자들이 논증 부담을 지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구승회 동국대 교수·윤리학 homini@dongguk.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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