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만나는 시]도종환, '슬픔의 뿌리'

  • 입력 2003년 1월 24일 1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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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하면 무심천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도종환 시인을 알게 된 이후로는 청주 하면 도종환 시인이 생각납니다. 지명과 인명 사이는 이렇게 자주 겹칩니다. 최근 도종환 시인이 펴낸 시집 ‘슬픔의 뿌리’(실천문학사)를 읽는 동안, 내내 도종환 시인의 선한 표정이 눈에 선했습니다. 느리고 낮은 시인의 육성까지 들리는 듯했습니다.

한때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가슴에 품었던 꿈의 온도가 많이 내려가 있는 지금, 시인은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유리창에 썼다간 지우’며 쓸쓸해합니다.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패랭이꽃’처럼 고개가 숙여집니다. 짧기만 했던 사랑, 하지만 그 사랑이 남긴 고통은 오래갑니다.

뒤돌아 ‘그대’를 향하던 시인의 발걸음이 이윽고 나무를 향합니다. 나무에 이르러, 시인은 회억(回憶)을 성찰의 차원으로 끌어올립니다. 선물로 받아온 섬백리향을 키우며 시인은 자신의 욕망과 조우합니다. 땅을 가리지 않고 잘 자라며, 향기를 내뿜어 벌레를 막고, 꽃향기가 백리 밖까지 나간다는 섬백리향. 섬에서 나는 꽃향기는 등대이기도 합니다. 풍란 향기가 지독할 때면 흑산도 어부들은 안개가 짙어도 배를 탑니다. 안개 밑으로 퍼져 나오는 풍란 향기를 맡고 귀항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 치맛자락처럼 스르르 흘러내리는 섬의 꽃향기라니.

하지만 섬백리향 키우기는 만만치 않았습니다. 물을 너무 많이 주고 손때를 많이 묻혀 죽이고 말았습니다. 시인은 죽은 나무 앞에서 ‘마음 어느 구석에 너무 지나치거나 너무 모자라는 데가 있’음을 깨닫습니다. 시인에게 나무는 곧 향기의 발전소입니다. 정향나무에서도 ‘없는 듯 있으면서 강한 향기’와 마주칩니다. 섬백리향과 정향나무의 꽃향기가 먼 곳으로 퍼져나가는 원심력이라면, ‘가까이 다가가야 느낄 수 있는’ 살구꽃 향기는 구심력의 향기입니다. 시인은 원심력과 구심력을 고루 갖춘 향기를 희구하며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꽃잎처럼 살고 싶’어 합니다. 슬픔의 뿌리가 빨아올린 향기와 꽃잎을 닮고자 하는 시인의 자세가 얼마나 단아하고 단정한지요.

향기는 홀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꽃향기는 뿌리와 줄기, 잎사귀는 물론이고 햇빛과 공기, 물과 흙 등 우주 전체와 교감한 결과입니다. 그리하여 향기와 꽃잎의 삶은 상생의 세계관에 바탕합니다. 하지만 안다는 것과 행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다른 문제입니다. 시인은 잘 알고 있습니다. 시 ‘섬백리향’에서 시인은 말합니다. ‘향기를 가진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시인은 향기를 갈구하기 이전에 가진 것을 버리는 일을 선택하고 거기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단풍 드는 나무에서 시인은 ‘버려야 할 것이/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는 사태를 목격합니다. 존재의 이유이자 삶의 전부였던 것을 버리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서’는 것이지요.(‘단풍 드는 날’) 바로 집착을 버리는 ‘방하착’의 경지. 작은 것을 모두 버리는 순간, 우주를 얻을 수 있다는 지혜 말입니다. 꽃잎처럼 낮은 곳을 향하는 삶은 방하착의 미학을 자기화하는 순간, 가능해집니다.

‘슬픔의 뿌리’를 덮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오랜만에 삼림욕을 했구나. 도종환 시인의 나무 시편들은 피톤치드가 많이 발생하는 울울창창한 침엽수림이었습니다.

이문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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