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리뷰]'매디슨 카운티의 추억' 들여다보니…

  • 입력 2003년 1월 27일 18시 54분


로버트:어젯밤 그 드레스를 입어요. 당신이 어떤 모습인지 영원히 남겨 두고 싶소. 우리 두 사람만을 위한 사진을.

프란체스카:그럴게요.

로버트:프란체스카, 당신은 ‘증말’ 아름다워요.

순간, 진지함을 넘어 긴장감마저 감돌던 산울림 소극장의 4층 연습실에 웃음이 터진다.

“‘증말’? 그건 아이오와 사투리야?”

‘프란체스카’ 손숙의 농담에 멋쩍게 웃는 ‘로버트’ 한명구.

1992년 출간돼 수많은 여성들을 울렸던 로버트 윌러의 베스트셀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연극 무대에 오른다. 연극 제목은 ‘매디슨 카운티의 추억’. 아이오와의 작은 마을 매디슨 카운티에서 무미건조하게 살아가던 중년 여성 프란체스카와 그녀 앞에 운명처럼 나타난 사진작가 로버트 킨케이드의 나흘간의 사랑과 이별을 아름답게 그린 작품.미국에서 6개월 동안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할 만큼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소설로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메릴 스트립 주연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이 같은 명성에 힘입어 작품의 배경이 된 매디슨 카운티의 ‘로즈먼 다리’도 관광 명소로 각광받았다.

이 연극은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위주로 하되 지난해 출간된 속편 ‘매디슨 카운티의 추억’의 일부 내용이 후반부에 살짝 버무려진다.

‘위기의 여자’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등 이른바 ‘여성 연극’의 1인자로 꼽히는 산울림의 임영웅 대표가 연출을 맡았다.

언제 웃었느냐는 듯, 다시 진지하게 연습이 시작됐다.

“…일생에서 오직 나흘간의 사랑 이후 서로를 간절히 원하면서도 오랜 세월 멀리서 그리워하며 죽어간 사람들의 인생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죽음을 앞둔 노년의 프란체스카가 자녀에게 마지막 편지를 쓰는 대목에서 손씨는 흐느끼며 휴지를 눈가에 갖다댔다. 그는 “어머니 역을 주로 맡다가 20여년 만에 ‘여자’로 돌아와 ‘연애’를 하니까 너무 좋다”고 했다. 그러나 두 주인공 모두 원작의 인기가 부담스럽다고 했다.

“처음엔 그냥 속삭속삭거리는 연극이잖아, 하고 쉽게 생각했는데 다른 작품보다 훨씬 어려워요. 우선, 이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요. 다들 마음속에 프란체스카와 킨케이드의 이미지를 하나씩 품고 있을 텐데.”(한명구)

이 작품은 얼핏 중년 여성을 겨냥한 사랑 이야기로 보인다. 남편과 자녀를 위해 살아온 프란체스카에게 예이츠의 시와 노을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린 젊은 시절의 꿈을, 그리고 무엇보다 여자임을 다시 일깨워주는 킨케이드는 주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할 만하다.

그러나 한씨는 “이 작품을 단순히 중년 여성의 짜릿한 사랑 이야기로 보지만 말고 그 속에서 소중한 사람에 대해 배려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손씨 역시 “내 눈엔 부엌데기이지만 다른 남자에게는 사랑스러운 여자가 될 수 있는 아내의 매력을 잊고 지내온 남편들이 많이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으며 로즈먼 다리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킨케이드에게 던진 프란체스카의 대사 한 토막이 떠올랐다. “이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로즈먼 다리에 관심이 없어요. 너무 가까이 있으니까, 그저 당연하게 여길 뿐이죠….”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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