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출신 세계적 '광대' 슬라바 폴루닌 인터뷰

  • 입력 2003년 2월 2일 19시 01분


사진제공 LG아트센터 연극 ‘스노우쇼’의 한장면

사진제공 LG아트센터 연극 ‘스노우쇼’의 한장면

《커다란 빨간색 주먹코, 하얗게 분칠한 얼굴, 푸대자루 같은 원색의 노란 의상….

말을 하지 않아도 그의 몸짓 하나, 손짓 하나에 어른과 아이들이 같이 울고 웃는다.

러시아 출신의 세계적인 광대, 슬라바 폴루닌(53). 찰리 채플린, 마르셀 마르소의 뒤를 이어 광대 예술의 계보를 이어가는 21세기 광대로 꼽힌다.

그에게 명성을 가져다 준 작품은 직접 연출하고 연기한 ‘스노우쇼(Snow Show)’.

‘옐로(Yellow)’라는 이름으로 1993년 초연됐던 이 작품으로 그는 에든버러 페스티발

비평가상(96년), 골든 마스크상(98년), 로렌스 올리비에상(98년) 등 권위있는 연극상을

휩쓸었다. ‘스노우쇼’는 세계 50개 도시에서 1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매료시켰다.

‘스노우쇼’의 두 번째 내한 공연을 앞두고 러시아에 머물고 있는 폴루닌을

전화와 e메일로 인터뷰 했다.》

―광대란 어떤 존재인가?

“광대는 결코 어리석기만 한 바보가 아니다. 광대란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는 존재다. 세상이 딱딱하게 굳은 사고와 원칙들에 사로잡혀 있을수록 광대들이 깨트려야 할 것은 더욱 많아진다.”

―왜 광대가 됐는가? 당신에게 있어 광대 예술이란 무엇인가?

“나에게 있어 광대 예술이란, 가능성이다. 세계에 대한 가능성, 연극 예술에 대한 가능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에 대한 가능성이다. 오늘날 세계는 매우 부조리하고 복잡하다. 다양한 예술 장르들은 각각 다른 방법으로 그 세계와 소통한다. 어떤 것은 심각하고 어두운 방식으로 접근하지만 나의 작품은 즐거움으로 세계에 다가간다. 즐겁다는 것은 삶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광대 예술의 매력은?

“쉽고, 단순하면서도 끝없는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광대 예술은 초등학생부터 대학교수까지 누구나 즐겁게 볼 수 있다. 나는 가족들이 함께 보고, 즐기고, 감동할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다.”

―작품을 만들 때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내 작품에는 두 가지 중요한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시와 철학이다. 나는 서커스의 광대가 잃어버린 시를 무대에서 부활시키고 싶다. 그리고 시와 철학을 기반으로 한 연극을 통해 사람들은 모순투성이인 현대의 정신 세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당신에게 영향을 준 예술가를 꼽는다면?

“내가 영향을 받은 예술가는 너무 많아 꼽기 힘들다. 가장 좋아하는 광대는 1920년대 무성 영화 시기에 활약했던 미국의 희극 배우 해리 랭던이다.”

―요즘 근황과 앞으로의 계획은?

“모스크바와 파리 등 두 곳에서 연극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러시아 작가 하름스의 작품과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를 소재로 한 새 작품을 준비중이다. 나는 거리 카니발을 매우 좋아하는데, 새로운 카니발도 계획중이다. 2001년에도 모스크바에서 국제 연극 거리 축제를 기획하고 연출했다.”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스노우쇼’는?

관객들의 가슴을 짠하게 만드는 사랑 이야기다. 특별한 줄거리가 있다기보다는 네 명의 광대들이 엮어가는 사랑과 헤어짐, 그리고 고독에 관한 에피소드로 이루어진다. 시각적 효과가 뛰어난 무대가 볼거리.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겨울 달밤을 배경으로 광대가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는 마지막 장면. 읽고 있던 편지 위에 눈물을 떨구면, 눈물에 젖은 편지는 눈송이로 변하고 어느덧 거센 눈보라가 돼 객석에 휘몰아친다. 공연 제목도 바로 이 장면에서 따온 것.

연극평론가 이진아씨는 “수많은 관념적인 연극속에서 연극이란 ‘머리’가 아니라 ‘몸’을 먼저 움직이는 것에서 시작되야 한다는 평범한 사실을 일깨워주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2001년에 국내에서 첫 공연돼 큰 호응을 받았다. 당시에는 폴루닌이 연출과 연기를 모두 맡았으나 이번 공연에서는 연출만 맡고 무대에는 서지 않는다. 12∼23일 LG아트센터. 평일 오후 8시. 토 오후 3시,7시. 일 오후 2시, 6시. 월요일 쉼. 공연시간 80분. 8세 이상 관람가. 2만원, 4만원, 6만원. 02-2005-0114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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