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동안 유럽인들이 동양을 바라보는 창은 가까운 투르크계 민족의 나라 ‘헝가리’와 ‘터키’였다. 식민지 경쟁이 시작된 뒤 이국주의(Exoticism)의 대상은 대부분 아프리카와 동아시아로 옮겨갔지만 이렇게 먼 나라의 음악을 직접 귀로 듣기는 어려운 일이었으므로, 음악 분야에서의 이국적 상상력은 계속 두 나라에 의존해야 했다. 19세기 음악작품에 ‘터키 행진곡’ 과 ‘헝가리 춤곡’이 많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브람스가 36세와 47세 때 발표한 21곡의 ‘헝가리 춤곡’은 대중에 그의 이름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고 짭짤한 소득까지 안겨주었다. 당시 유럽 시민가정의 피아노 보급률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었고, 브람스는 이 곡집을 피아노 연탄용으로 발표해 젊은 부부와 자매들의 인기를 끌었던 것이다.
훗날 이 곡집은 브람스 자신과 드보르자크 등에 의해 관현악용으로 편곡됐고, 오늘날에는 주로 관현악용으로 연주된다.
지난 시절 이 곡집의 가장 사랑받는 음반은 단연 카라얀 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것(DG·60년 녹음)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카라얀 시대 베를린 필이 보유한 화려한 음향이다. 이 악단의 음향은 황금빛으로 표현되는 뜨거운 금속성 질감을 지니고 있어서 ‘목질’ 이나 ‘투명함’으로 선전되는 다른 1급 악단들과 확연히 구별됐다. 어느 정도 과장된 ‘과열’의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그런데 음악팬들은 1990년대에 베를린 필과 비슷한 뜨거운 음향의 악단을 또 하나 만나게 됐다. 바로 헝가리인 이반 피셔가 1983년 창단한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다.
이 악단이 연주한 ‘헝가리 춤곡’(필립스·98년 녹음)은 훗날 관현악 음향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음반으로 꼽힐 듯하다. 헝가리인이 헝가리 음악을 연주했다는 ‘정통성’은 논외로 하더라도, 지극히 정교한 현의 질감, 전체 음향의 화려한 밸런스로 인해 눈앞에 선명도 높은 대형화면이 펼쳐진 느낌까지 갖게 된다.
집시 스타일의 바이올린 독주와 헝가리 전통악기인 ‘침발롬’ (17세기에 우리나라로 흘러들어와 ‘양금’이 된 악기) 음향이 어우러져 옛 집시밴드의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한 점도 남다른 매력으로 꼽을 만하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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