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음악을 통해 현대 예술의 한 흐름을 짚어보고자 합니다. 연극과 마찬가지로 혼종의 문제는 음악에도 심각합니다. 우리의 삶을 총체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세계화 주의’는 사실 문화예술인들이 매우 걱정하는 이념입니다. 문화예술은 생태적으로 정체성과 지역성의 보장을 기초로 한 다양성을 추구하는데, 세계화는 모든 것을 표준화, 획일화함으로써 상업화를 지향하기 때문이지요. 얼마 전 한 국제 세미나에서 파리의 ‘세계 문화의 집’ 원장인 셰리프 카즈나다씨는 세계화가 지닌 위험의 하나로 문화적 표현의 정형화를 지적했습니다. 그는 정형화된 문화상품은 다양한 문화상품보다 더 잘 팔리기 때문에 유명 거대회사들이 ‘월드 뮤직’ 같은 문화상품을 생산하고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이번 주에 소개하는 허영한 교수는 혼종음악을 대표하는 ‘월드 뮤직’의 문화적 착취에 대해서, 주성혜 교수는 혼종 음악을 문화주체적으로 접근하는 자세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혼종양식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균형을 잡아줄 것이라 생각됩니다. 김윤철 연극원교수
《한 중년의 미국인이 멕시코의 멕시코시티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의 귀에는 특이한 악기로 연주되는 낯익은 선율이 들려왔다. 한 외팔이 노인이 나뭇잎을 입에 물고 연주하는 그 선율은 다름아닌 냇 킹 콜이 스페인어로 부른 그 선율 아닌가. 중년의 미국인은 노인의 연주를 녹음했고 이 음악은 디지털 녹음기술로 처리된 현악사중주의 음악과 더빙되어 음반으로 나왔다.》
이상은 크로노스 현악4중주단의 2002년 앨범인 ‘누에보’에 포함된 ‘페르피디아’ 트랙이 만들어진 일화다. 중년의 미국인은 크로노스 현악4중주단의 리더인 해링턴이었고 노인은 카를로스 가르시아였다. 가르시아는 장애의 몸으로 그 길거리에서만 50년 가까이 유일한 생계 수단으로 나뭇잎 연주를 해왔다고 한다.
나는 크로노스를 21세기 클래식 음악계의 변화를 예견한 선구자처럼 여겨왔다. 그들은 현악4중주의 새로운 레퍼토리 확보를 위해 20세기 현대음악에 고집스럽게 전념하면서도 상업적으로 성공한 특이한 경우이다. 난해한 현대음악뿐 아니라 대중음악까지 과감히 받아들여 점잖은 연주복 차림의 현악4중주단과의 차별화에 성공하였다. 이들이 나를 또 한번 놀라게 한 것은 아프리카의 무명 작곡가들의 작품을 모아서 내놓은 1992년 앨범 ‘아프리카 작품들’이었다.
무명 작곡가들의 음악을 모았다는 그 용기도 놀라웠지만 아프리카 음악인들이 연주한 아프리카 토속 악기의 음색을 곁들인 현악4중주 음악은 신선함을 넘어 충격적이었다. 나의 첫 반응은 크로노스다운 용맹함에 대한 찬사였다. 그러면서도 한 편에서는 남아프리카 민속 음악인들과 함께 노래한 폴 사이먼의 ‘그레이스 랜드’가 떠올랐다. 폴 사이먼을 비롯한 몇몇 대중음악인들이 소위 월드 뮤직(또는 월드 비트)이라는 새로운 대중음악의 장르를 만들어 성공을 거두었던 일이 생각난 것이다. 월드 뮤직은 세계화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장르로 찬사를 받는가 하면 제3세계의 민속음악까지 메이저 레이블들이 상업적으로 착취한다는 비판을 동시에 받아왔다.
지난 10년 동안 크로노스는 그야말로 전 세계의 구석구석을 뒤지고 다녔다. 크로노스의 음반사는 “거의 모든 지역의 작곡가들과 함께 일하며, 여러 문화를 대표하는 다양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데 일조했다”고 선전한다.
그럴 듯하게 들리는 말이다. 이왕이면 한국의 작곡가들을 소개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생긴다. 세계적인 연주단체가 우리의 가야금이나 대금과 함께 연주하는 음악이 미국 굴지의 음반사에서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마음은 왠지 편치 않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에게 혼종을 요구할 것이다. 어차피 지금의 한국 현대음악도 서양음악을 받아들인 혼종이니 문제없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그들의 요청이 오면 나도 열심히 가야금과 현악4중주를 위한 작품을 만들 것 같다.
앞에서 말한 멕시코 노인에게 미국의 국립공영라디오방송국(NPR)의 기자가 찾아갔다. 이 기자에 의하면 가르시아는 자신의 연주가 크로노스 음반에 포함된 사실도 몰랐다고 한다. 그리고 그에게는 한푼의 연주 사용료도 지불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크로노스의 제작팀은 원곡의 저작권을 지닌 멕시코 음반사에 상당한 액수를 지불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돈 중에 단 한푼도 정작 연주를 한 노인에게는 돌아가지 않았다. 전형적인 착취 행위가 현실로 드러난 셈이다. 물론 크로노스는 기자로부터 이 사실을 전해 듣고 그 노인을 돕기 위한 기금을 모으고 있다고 한다.
크로노스를 위해 작곡한 제3세계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대중음악계의 아프리카 스타인 유수 은두르와 살리프 케이타의 월드 뮤직에서 ‘월드’라는 단어는 중립적이지 않다. 이들의 음악은 분명 서구적 취향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음반 업계가 사용하는 월드라는 단어의 의미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요즘과 같은 디지털 세상에 혼종은 너무도 쉽게 성취된다. 10여개의 독립 음반사들이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의 민속음악을 서구의 전자음악 기법을 사용하여 혼종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들의 음반은 작곡가나 연주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디지털 음향기술에 능통한 기술자나 혼종에 탁월한 감각을 지닌 디스크자키가 더 중요하다. 혹시 주위에 누가 녹음하고 있는지 둘러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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