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이야 어찌 됐던 현재 필리핀에는 당시 케냐 대통령이 보낸 아프리카 동물이 버젓이 살아 있다. 케냐의 거대한 사파리공원 마사이 마라에서 잡혀온 기린이며 얼룩말이며 임팔라 워터벅 등 아프리카 초원에서 뛰어 다녀야 할 야생동물이 필리핀의 한 섬에서 29년째 살고 있다.
그 섬은 칼라윗 섬. 위치는 팔라완의 북단인 부수앙가 섬 북쪽, 클럽 파라다이스가 있는 디마키야 섬에서 방카 선으로 한시간 거리다. 마치 영화 ‘쥐라기 공원’을 연상케 하는 이 섬을 찾아 디마키아 섬을 방카 선으로 떠났다. 칼라윗 섬은 디마키아 섬과 달리 주변이 갯벌이었다. 새들이 조개를 잡는 갯펄로 상륙, 팜트리 우거진 정글로 들어섰다.
개울을 건너자 숲길에 서 있는 트럭(8t)이 보였다. 화물칸에 일자형 좌석을 설치해 개조한 사파리투어용 트럭이었다. 숲을 빠져 나오자 언덕이 보였다. 가장 먼저 나타난 게 사슴종류. 사람을 경계하는 사슴 무리는 트럭이 다가가자 멀찌감치 달아났다. 언덕을 넘자 초원이 나타났다. 얼룩말이 보였다.
이 세상 동물 가운데 가장 화려한 무늬를 지녔다는 얼룩말. 새끼까지 10여 마리가 무리를 지어 나무그늘 아래서 쉬고 있었다. 얼룩말은 아프리카의 사파리공원에서도 만나기 쉽지 않은 동물. 지난 세 차례 아프리카 취재에서도 한 번 밖에 보지 못한 것을 엉뚱하게 필리핀의 섬에서 보게 되다니….
다음에 본 것은 기린. 한 마리가 외로이 숲가를 거닐고 있었다. 기린 역시 아프리카 사파리공원에서 보기가 쉽지 않은 동물 가운데 하나. 30년 가까이 이 섬에 살아오면서 적응했지만 경계심만큼은 여전한지 가까이 다가가자 큰 다리로 성큼성큼 뛰어 달아났다.
아시아에는 단 하나 뿐인 이 ‘게임 리저브’(Game Reserve·아프리카의 야생동물을 자연상태에서 관찰하는 사파리 공원을 부르는 용어)의 공식명칭은 ‘칼라윗 게임 리저브 앤 와일드 라이프 생추어리’. 섬 한가운데 관리사무소에 가니 그동안 어떻게 적응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안내판이 걸려 있었다. 아열대의 아프리카 초원에 서식하는 동물이 열대의 필리핀 섬에서 적응하기란 쉽지 않은 일. 건기와 우기로 명확히 나뉘는 자연조건에 대부분은 적응했지만 가젤과 토피는 실패해 한 마리도 남지 않았다. 당초 8종 104마리가 옮겨왔는데 지금은 6종 502마리.
클럽 파라다이스로 돌아가는 배를 타기 위해 나간 해변 모래사장에서 커다란 동물발자국을 발견했다. 기린이었다. 팜트리 우거진 멋진 해변의 바닷가를 걷고 있을 긴 목에 긴 다리의 기린 모습. 쥐라기 공원만큼이나 흥미를 자아내는 풍경이다. 누구든 운 좋은 여행자는 이 섬에서 이 장면을 촬영할 수 있을 것이다.
팔라완칼라윗섬(필리핀)=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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