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책]신간 ‘김영하-이우일의 영화이야기’

  • 입력 2003년 2월 6일 22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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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사고하는 소설가와 이미지로 생각하는 만화가가 영화로 만났다.

소설가 김영하와 ‘도날드닭’의 만화가 이우일이 함께 펴낸 책 ‘김영하·이우일의 영화이야기’는 한 편의 영화를 두 가지 버전으로 감상할 수 있는 ‘멀티 텍스트’다.

김영하가 여러 매체에 연재했던 글 26편을 엮고 이우일이 그림을 그린 이 책은 저자들 스스로 밝혔듯 ‘영화를 영화로 보지 않는 자’의 영화 이야기. “영화를 빙자하여 사실은 자기 얘기가 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는” 저자답게 영화의 대사 한 줄, 한 장면이 불러일으키는 기억들과 종횡무진 오가는 생각들이 담겼다.

‘디 아더스’의 마지막 대사, “이 집은 우리 집이야!”가 환기시킨 ‘우리 집’에 얽힌 경험을 떠올리던 저자의 생각은 “‘우리 집’이라는 것이 하나의 신화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침입자들로부터 자신의 공간을 방어하려 애를 쓰지만, 우리도 한때는 어쩌면 지금도 누군가에게 침입자일지도 모른다”고 나아간다.

또 연탄가스로 열 살 이전의 기억을 모두 날린 경험은 ‘메멘토’가 “기억의 불완전함을 다룬 영화라기보다 기록에 대한 집착을 이야기하는 영화”라는 생각으로 발전한다.

“도대체 왜 과거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이 빠져 있다면 그 기억이라는 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중략)…‘메멘토’에서 우리를 속이는 건 기억이 아니고 오히려 기록이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손질하다 ‘화양연화’가 재미없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떠올린 10대, 20대, 30대의 사랑의 차이도 재미있다.

“10대엔 자기 욕망이 뭔지도 잘 모르고 인정해야 할 것을 인정하지 않아서 문제들이 커진다면, 20대의 욕망은 절제가 안된다. 그 무절제도 때로는 아름답다. 30대의 사랑은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하는 방식이다.”

책장을 넘기며 엉뚱하고 엽기적인 이우일의 그림만 봐도 즐겁다.

‘화양연화’에서 장만옥이 가슴에 화살을 꽂고 ‘내가 그를 사랑했다는 걸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며 눈물을 흘리는 그림은 웃음을 터뜨리게 만든다. 214쪽. 9500원. 마음산책.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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