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귀하가 제 돈을 가지고 한 일에 불만이 많습니다. 저는 단순히 마이크로소프트의 주주일 뿐만 아니라 미국 국민의 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제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의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것 이상의 더 소중한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극소수의 대기업들이 지배하는 나라에서는 살고 싶지 않습니다. 아무리 제가 주주로 있는 회사라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필자가 참여연대 사무처장으로 일할 1998년 당시 대기업에 1조원이 넘는 돈을 제대로 된 담보도 없이 빌려주었다가 떼인 한 은행을 상대로 소액주주운동을 벌인 적이 있다. 주주총회에 참석해서 경영진에 따지기 위해 그 은행 문을 들어섰을 때 사람들이 긴 줄을 서 있었다. 소액주주들이었다. 이들은 기실 주주총회에 참석해 경영상황을 점검하고 경영진에게 발언을 하러 온 것이 아니라 모두 주주총회 기념품을 받고는 곧바로 돌아가 버렸다. 단기 차익만을 노린 소액주주, 주총 기념품 챙기는데 급급한 소액주주 - 이런 사람들은 건강한 기업, 수익성 높은 기업, 그럼으로써 높은 투자수익을 보장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 결과는 외환위기 같은 국가적 재앙이기도 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에게 한 사람의 주주로서, 그러나 그 이전에 미국의 한 시민으로서 위 편지를 쓴 사람은 행동하는 지성인 로버트 라이시이다. 클린턴 정부하에서 노동부장관을 지낸 참여파 사회사상가이자 학자이기도 하다. 그가 최근 펴낸 이 책(원제 I'll Be Short)에서는 현재의 미국사회를 예리한 통찰력으로 분석하고 있다. 기업의 수익이 늘어남에도 대량감원 임금삭감이 일상화되고 있고, 열심히 일하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은 사회복지제도의 허점과 삶의 질의 하락으로 옛날이 되고 있으며, 누구나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공평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도 헛된 구호가 되고 있다는 것이 그의 눈에 비친 2000년 이후의 미국의 사회이다.
이 책에서 라이시는 단지 비판에 머물고 있지만은 않다. 그는 다양한 해결방안을 내놓고 있다. 기업이 윤리적 경영을 통해 사회적 책임을 다할 때 동시에 경제적으로도 번영하도록 해야 하며, 사회보장제도의 확충이 낭비가 아니라 생산성을 높이는 길이며, 평생교육과 진정한 가정의 가치를 진작시킴으로써 미국사회의 재건을 도모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시민들의 행동이야말로 미국이 당면하고 있는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지난 2년간 추락하고 있는 미국경제와 9·11테러 등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미국 국민들이 그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점들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바로 그 자신과 공동체를 위해 자신이 주주로 있는 기업에 편지를 보내고, 투표에 참여하고, 정치인에게 전화를 걸어 구체적 일에 참여해야 한다고 라이시는 주장한다. 그가 제시하고 있는 이 마지막 호소, 그 메시지는 이 땅의 침묵과 방관의 한국 국민들에게도 그대로 호소력을 가진다. 이 책은 미국사회를 다룬 것이지만 그 해결방법은 그대로 한국사회에도 적용되기 때문이다. 단숨에 읽어제낄 수 있는 170여페이지, 이 작은 책자로 우리가 얻는 것은 너무도 소중하다.
박원순 변호사·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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