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화제도서/도쿄에서]'일본의 군대-병사들의 근대사'

  • 입력 2003년 2월 7일 18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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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숙:히토쓰바시대교수.언어학.ys.lee@srv.cc.hit-u.ac.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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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군대-병사들의 근대사'/요시다 유타카 지음. 이와나미 신서.2002년

군대란 두말할 것도 없이 무기를 가지고 전투행위를 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실제로 전투행위를 하지 않는 시간이 전투행위를 하는 시간보다 훨씬 길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따라서 군대에도 틀림없이 군대 나름의 ‘일상’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병사들의 대부분을 점하고 있었던 민중은, 군대생활 속에서 도대체 무엇을 체험했고, 무엇을 배웠을까 하는 것이 이 책의 중요한 테마다.

저자는 일본의 근대적 생활양식이 먼저 군대에서 도입되어 군대에서 사회로 퍼져나갔다고 지적하고 있다. 시계를 중심으로 행동을 규제하는 태도, 양식(洋食), 양복(洋服) 등등의 서양식 생활 습관이며, 규칙적으로 걷는 법과 신체를 움직이는 방법 등을 민중은 군대에서 배우고 익혔다는 것이다. 특히 메이지(明治)시대 때는 사회와 군대간의 거리가 너무도 컸기 때문에 민중은 거기서 일종의 ‘컬처 쇼크’까지 느꼈다고 한다.

저자에 의하면, 일본 군대의 가장 큰 특징은 농촌의 철저한 가난을 배경으로 성립되었다는 점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군대 가서 처음으로 하루 세끼를 먹었다는 체험은 결코 드문 일이 아니었고, 군대에서의 가혹한 훈련도 농촌에서의 노동에 비하면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게다가 전전(戰前)의 일본은 장자(長子)상속제였으므로 농촌의 둘째와 셋째아들에게는 취로의 기회도 극히 적었다. 그래서 장남 이외의 농촌 남자들에게는 병사가 되는 것이 그들에게 남겨진 유일한 출세 코스였다.

한편 의무교육에 이어지는 고등소학교를 졸업한 계층은, 특히 향학심 향상심이 대단히 강해서 우수한 하사관을 공급하는 기반이 되었다. 그들은 ‘자작하층(自作下層) 소작상층(小作上層)’에 속하는, 농촌에서의 중간층이었는데, 제대 후에는 그 계층 출신들이 촌회(村會) 의원을 비롯해 농촌사회의 중심적인 존재가 되었다. 사실 퇴역 병사들이 만든 ‘재향군인회’는 전전의 일본 사회를 움직이는 중요한 힘이었다. 다시 말해서 전전의 천황제 이데올로기의 기반은, 밑바닥의 민중과 대학의 엘리트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농촌의 중간층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계층을 강화시킨 기둥 역할을 한 것이 바로 군대였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구조는 전후(戰後) 일본에서도 상당히 오랫동안 온존되어 왔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특히 전후의 일본 정치를 주도해 온 자민당의 지지 기반이 바로 이 계층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일본의 군대는 단순하게 전쟁만을 위한 집단이 아니라 일본의 사회구조 전체를 지탱해 온 조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 군대의 특징이었던 강렬한 정신주의와 멸사봉공(滅私奉公)주의는, 군대를 포기했다고 하는 전후의 일본사회에도 역시 뿌리깊게 남아 있다. 이렇게 보면 군대는 근대사회의 축도임과 동시에, 근대사회 또한 ‘군대화’된 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근대 일본에서는 이 관계가 대단히 일그러진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근대사회와 군대의 관계성 그 자체는 일본에만 특유한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원제 日本の軍隊-兵士たちの近代史.

이연숙 히토쓰바시대교수·언어학 ys.lee@srv.cc.hit-u.ac.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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