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집단 정신의 진화'

  • 입력 2003년 2월 7일 18시 16분


◇집단 정신의 진화/하워드 블룸 지음 양은주 옮김/456쪽 1만6000원 파스칼북스

인류의 가장 큰 적은 누구인가?

“인류 자체”라는 대답을 제외한다면 그것은 바로 “미생물”일 것이다. 인류의 탄생 이후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는 수많은 질병과의 싸움은 바로 미생물과의 ‘경쟁’이다. 처음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던 인류는 의학을 발전시키며 이제는 상당한 부분에서 승리를 거두고 있다.

하지만 독감 바이러스와 에이즈 바이러스를 비롯해 아직도 인류가 생존의 위협을 받으며 싸우고 있는 바이러스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인류와 미생물은 지금도 지구라는 삶의 터전을 놓고 치열한 생존투쟁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저자는 인류가 지구의 역사에서 훨씬 선배인 미생물들로부터 생존의 기술을 배우며 그들과 싸워왔다고 주장한다. 인간 개체들이 다양한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를 교환하며 동조, 변화, 자원 이동, 집단간 토너먼트 등의 방법으로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남은 것은 바로 이 미생물들이 개발해 온 생존의 기술을 배운 덕택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미생물들이 초일류의 데이터 연결자들임에 비하면 우리 인간은 아직도 그들에게 단지 고기와 피를 먹이로 제공하는 한낱 가축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많은 사람들이 인류의 지적인 작용과 그 성과들을 전 세계적으로 소통시키는 정보통신 네트워크가 인류의 미래를 바꿔놓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저자는 이런 네트워크를 통한 정보의 소통과 예측이 사실은 오랜 옛날부터 존재해 온 것이라고 본다. 그는 이 네트워크를 ‘집단 정신(Global Brain)’이라고 부른다. 저자에 따르면 미생물의 집단정신은 장거리 전달, 데이터 교환, 새로운 해결의 열쇠를 끌어내기 위한 유전적 변형, 게놈을 재조작하는 능력 등을 갖추고 인터넷이 탄생하기 약 91조(兆) 세대(Generation) 전에 그 작용을 시작했다. 고대의 미생물은 세계적인 정보 교환의 기술을 이미 마스터했던 셈이다.

이 책은 바로 집단 정신의 역사에 대한 탐구의 기록이다. 저자는 생물학 곤충학 신경학 심리학 등 다양한 지식을 동원해 우주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인간을 비롯한 생물들이 ‘집단 정신’을 통해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 설명한다. 이를 통해 인간 하나 하나는 독립된 개체인 동시에 집단 정신의 일부임을 보여준다.

그는 진화론에서 대립해 온 리처드 도킨스류의 ‘개체선택이론’과 찰스 다윈류의 ‘집단선택이론’이 공존 가능하다고 주장하며 그 대안으로 ‘복합적응시스템’을 제안한다. 개체선택이론에 따르면 인간과 동물은 유전자의 탐욕에 따라 움직인다. 반면 집단선택이론에 의하면 개체들은 더 큰 전체의 이익을 위해 스스로 희생한다.

그런데 복합적응시스템에 따르면 각 개체들은 반(半)독립적 단위로 이뤄져 있으면서도 하나의 문제를 풀기 위해 함께 작용한다. 이 시스템은 생물학적 차원뿐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각 단위 개체의 힘을 뛰어넘는 문제가 생겼을 때 각 개체는 경쟁과 이타심의 공존을 통해 전자공학적 혹은 생물학적 요소들은 서로 결합하며 그것을 해결한다. 집단 내에서 당면한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개체들은 권력과 좋은 먹이, 편안한 잠자리, 성적인 특권을 보상받지만 문제의 해결 수단을 찾지 못한 개체들은 사회시스템에서 고립되고 힘을 잃으며 내적으로도 무기력해진다.

환경문제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인간이 지금까지 자연을 괴롭혀 온 데 대해 자연의 복수를 받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저자는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의 탐색 도구라고 말한다. 만일 인간이 고통받고 실패한다면 그것은 자연의 복수가 아니라 인간의 실패를 통해 교훈을 얻고 미래에 피해야 할 길을 알기 위한 자연의 ‘학습활동’일 뿐이라는 것이다. 현재 인간의 커뮤니케이션과 상호작용을 크게 바꿔 놓고 있는 정보통신 네트워크 역시 그 중 하나일 뿐이라는 저자의 관점은 인간의 역사를 좀 더 멀리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한다.

김형찬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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