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12년 10월 8일 외할아버지가 온정리 온천에서 구입한 금강산 대관(金剛山 大觀)이라는 제목의 아주 오래된 금강산 관광 사진첩을 갖고 있다.
이 사진첩은 풍류가 많으셨던 외할아버지가 1912년 10월 고향인 충청도 서산을 떠나 속초를 통해서 고성을 거쳐 차편으로 외금강으로 가셨다가 구입한 것이다.
꿈 많은 어린 시절 우연히 이 빛 바랜 사진첩을 가지게 된 후 나는 언젠가는 금강산을 여행하리라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펼쳐보면 볼수록 금강산 일만이천봉의 수려함이 사실적으로 잘 그려져 있다.
대학시절 산악부 생활을 한 이후 내게는 설악산을 등반할 때면 더욱 금강산까지 가고싶은 충동으로 가득하였다. 백두대간의 맥을 이어 설악과 금강을 이어가는 산행에 대한 꿈을 키웠다. 재미 산악인들이 금강산에 대한 산행 기사를 잡지에 기고한 내용을 보다 보면 공연히 가슴이 뛰곤 하였다.
1998년 바다를 통해 금강산 관광이 실현됐으나 땅을 밟고 가고픈 마음을 버릴 수 없었다. 비록 남에서 북으로 걸어갈 수는 없었으나 2001년 2월 23일에 처음으로 '금강산 마라톤대회'를 열어 아쉬움을 대신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올해, 북한 핵 문제와 북한 자금지원 문제 등이 겹친 상황에서도 육로관광의 길이 열렸다.
어릴 적 키웠던 금강산 여행에 대한 꿈이 이제는 육로로 남측을 출발하여 북측까지 달리는 마라톤 대회를 진행하고픈 꿈으로 자리하고 있다.
답사 첫날인 5일 이른 아침 고성 콘도에 모인 답사단은 버스를 타고 통일전망대 남측 출입국 관리사무소로 향했다.
저진 검문소를 통과하여 통일전망대로 이르는 길에 답사단에는 침묵뿐이었다. 검문소 이전까지는 과연 우리가 육로로 갈 수 있다는 것인가라는 우려도 주고 받았으나 이제는 모두 입을 닫았다. 긴장 때문인가.
남측 출입국관리소에 다다르자 금강산내에서 운행하는 버스들이 줄을 지어 대기하고있었다. 그 순간 우리가 정말로 길을 따라 가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아무도 말문을 열지는 않았다. 반세기만의 민족적인 사건이라 언론들이 집중적인 취재를 하고 있었다. 출입국 신고를 모두 끝내고 방북관련 서류를 제출하고 빠져나가 지정된 버스에 오르니 감회가 새롭다.
버스 뒤로는 하얀 눈발이 휘날리는 사이로 군인들만 부산하게 움직인다. 통일전망대를 나와 민통선을 통과한후 비무장지대로 들어가는 3층으로 된 철책 통문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침묵과 함께 반세기 동안 민간인의 출입을 허락하지 않을 것 같던 비무장지대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돌이켜 보면 비무장지대는 우리 민족이 엄청난 대가를 치른 역사의 장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다.
갑자기 뒷좌석에서 작은 외침 소리가 난다.
'와! 고라니다'
창 밖을 보니 고라니 한 마리가 깡총깡총 뛰면서 우리 일행을 반겨주고 있었다.
남측한계선에서 1.2Km를 들어가니 드디어 군사분계선이 나오고 300m를 더 가니 DMZ 북측한계선이다. 소총을 맨 북한군 초병 두 명이 기립 자세로 서서 범상치 않은 눈으로 우릴 주시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을 반기는 것일까? 순간 모두들 얼어붙은 듯 조용했다. 모두들 짜릿한 경험을 하는 순간이었다. 어딘가 모를 전율이 온몸에 흘러 들었다.
버스는 철도 노반이던 길과 7번 국도 임시도로인 비포장 도로를 넘나들며 달렸다. 길은 울퉁불퉁하면서도 비좁아 차 한대가 겨우 통과할 정도였다.
북녘 땅이다. 흔들리는 버스속에서 반세기 만에 금강산을 육로로 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오른쪽 동해바다 쪽으로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이 서린 감호가 얼음 위 눈 속에 가려져 있다.
감호는 고성군 구읍리로부터 남쪽으로 6Km 지점에 위치한다. 이 호수는 둘레는 약 3Km이지만 호수가 거의 원형으로 되어있어서 영랑호보다 더 넓다. 동쪽으로 긴 모래둑을 사이에 동해와 인접해있다. 주위에 푸른 소나무들이 우거지고 꽃들이 만발한 아름다운 곳이라 하여 옛사람들이 관동의 아름다운 세 호수(동정호,시중호,삼일포)와 견주어 감호라 칭송하였다 한다.
지금은 감호의 자취와 기암괴석만 볼 수 있고 푸른 소나무들은 온데 간데 없어 씁쓸함을 더해준다. 다만 아직껏 해당화가 무리를 이뤄 피는 모래 언덕과 물 깊이가 낮은 습지로 생태계의 보고를 이루고 있다.
금강산의 마지막 자락 적벽산(116m)이 가로 막았다. 적벽산아래 도로공사 구간 중 넓은 지역이 나타나자 북한측 출입국관리 직원들과 군인들이 버스를 세우고 일일이 차내의 인원을 점검하러 다닌다.
차내를 인민군복을 한 군인 3명이 들어오는 순간 일행은 숨을 죽이듯 고요하게 움츠러들었다. 왜 그럴까? 53년만의 만남이 이리도 긴장감이 돌아서야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모두들 어떠한 돌발사태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을까?
군인들의 통행점검이 끝나자 다시 버스가 출발, 적벽산 끝자락을 빠져나가자 오른편에 낙타 등처럼 구부러진 구선봉을 지난다. 구선봉(187m)은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기괴한 바위들이 칼날이나 톱처럼 날카롭게 늘어서있다.
옛날 아홉신선이 산마루에서 바둑을 두었다 하여 구선봉이라 불리지만 아마도 필자의 생각으로는 보다 신비로운 생각을 북돋아 주기 위하여 신선의 이름을 빌어왔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넓은 평원이 나오면서 옛 고성 읍내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폐허가 된 채 그대로 방치된 옛날 역사(驛舍), 옹기종기 토담집으로 모여있는 시골마을 풍경이 시계바퀴를 몇 십년 뒤로 되돌려 놓은 것같았다.
동네 사이사이로 간간이 보이는 주민들 사이로 철모르는 어린이들이 간간이 호기심 어린 표정들이 우리 일행을 물끄러미 바라다 보고 있었다.
어느새 우리에게 익숙한 곳 삼일포로 접어들고 있었다. 삼일포는 고성항에서 12km 떨어져 있는 곳이다. 옛날에 어떤 왕이 하루동안 머물다 가려다가 경치가 너무 좋아서 3일 동안 머물다 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할 정도로 호수 풍경이 아름답다.
예로부터 관동 팔경의 하나로 이름을 떨쳤고 호수 풍경으로는 전국적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삼일포 가는 길목으로 접어들면서 포장도로라서 훨씬 빨리 달려가기 시작했다.
침묵은 계속되고 있었다. 민간인들이 판문점을 거치지 않고 다른 지역의 도로를 통해 남북으로 왕래하는 것은 53년 휴전협정 체결이후 처음이어서일까?
고성항에 마련된 북측 출입국 관리사무소를 통과하자 다소간에 일행들의 분위기가 살아났다. 통일전망대 남측 출입국관리소를 출발해서 비무장지대를 지나 7번 국도를 따라 고성항 북측 출입국관리소까지 총 39.4km의 거리. 시간으로는 1시간 20분 소요된 거리를 반세기 아니 53년 걸려왔다는 감회를 생각했던 것일까? 이곳에서 정식으로 출입국 절차를 밟았다.
다음날 금강산 구룡연 지역을 산행했다. 흰눈 덮인 구룡연은 외금강의 가장 아름다운 경치답게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구룡연은 세존봉의 서북쪽 주위를 싸고도는 긴 골짜기에 이뤄진 명승지로서 신계사 터가 있는 맨 아래 골짜기로부터 신계동, 옥류동,구룡동으로 이뤄져 있다.
구룡연의 아름다움에 심취한 후 하산해 북측이 운영하는 금강원에서 북한식 만두와 냉면 그리고 비빔밥으로 점심을 하였다. 모두들 그 독특한 맛과 북한식의 순박한 서비스에 흥미로운 기분을 맛보았다.
육로관광이 보편화되면 북한식 식사를 제공하는 금강원은 아마도 우리네 관광객들에게 명소가 될 듯 싶었다.
오후 3시에 북한측 출입국 관리사무소를 통과하여 다시 어제 길로 되돌아왔다. 그 옛날 우리 외할아버지는 금강산의 외금강, 내금강, 해금강을 두루두루 수일간을 유유자적하게 돌아보셨을 것이다.
우리에게도 분명 그런 날이 올 것이라 기대해본다. 아니 너무 사치스런 생각일까 싶다는 생각이다.예까지 온 것만도 어디인가. 뒤돌아서 오는 길은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들로 혼미해졌다. 현대의 대북 송금문제로 나라는 온통 시끌벅적할 것이고, 국제적으로는 연일 계속되는 미국의 대 이라크 공격등, 그리고 북한의 핵문제와 관련해서 또 한바탕 우리는 홍역을 앓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돌아오는 길에 비무장지대안에서 어제 보았던 고라니 한 마리를 다시 보게 되었다. 고라니도 우리 일행을 반기고 있었다. 또한 이 도로를 달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아니 걸을수만 있다고 해도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언젠가 우리는 이 도로를 이용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걷고,달리고,자전거를 타고,자동차를 타고,오토바이를 타고 자유자재로 다니는 꿈이 상상이 아니고 현실이 되길 바랬다.
당장 2월21일 일반인들이 최초로 육로를 통해 들어가 개최하는 금강산 마라톤 대회의 성공을 기원해 본다.
<동아닷컴>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