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 토끼야/이상권 글 이태수 그림 36쪽 8000원 창작과비평사(6∼9세)
시골 소년의 토끼잡기에 얽힌 이야기. 창작과비평사가 첫 그램책으로 내놓은 작품이다.
이상권씨는 초등학교 4학년 때의 경험을 글로 썼다지만 시골아이 시우의 나이는 아직 초등학교 입학전 예닐곱살 정도로 보인다.
엄마와 단 둘이 사는 시우는 친구들이 하고 다니는 토끼털 귀마개가 부럽다. 친구들은 아버지나 형이 산토끼 가죽으로 만들어 주었단다. 돌담 안 양지바른 곳에서 털 달린 검정 고무신으로 땅바닥에 토끼그림을 그리는 시우의 모습이 쓸쓸하다.
마당 가득 눈이 쌓인 날, 시우는 뒷산에 올랐다가 산토끼를 발견한다. 그때부터 시우와 토끼의 숨가뿐 숨바꼭질이 시작된다. 직접 토끼 덫을 만들어 산에 오르지만 약삭빠른 토끼는 무수한 발자국만 남기고 좀처럼 걸리지 않는다. 며칠 몇 차례의 실패 끝에 약이 오를 대로 오른 시우에게 이제 토끼털 귀마개는 문제가 아니다. 오직 산토끼를 자기 손으로 잡는 것! 산토끼는 ‘거봐,이 멍청아! 너는 나를 잡을 수 없어!’라며 놀리는 눈빛을 보내지 않는가.
결국 시우는 토끼를 덫에 걸리도록 하는 데 성공하지만 순간 자신이 한 일을 깨닫고 산토끼의 목에 걸린 덫을 손으로 잡는다.
‘순간 시우의 입에서도 산토끼의 울음소리와 비슷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시우의 손등에서 핏방울이 빨간 꽃잎처럼 떨어졌습니다.’
“누가 죽었어?”
숨죽여 듣고 있던 딸애가 갑자기 묻는다. 여섯살 난 딸애에게 한낱 미물인 토끼나 사람이나 똑같이 느껴지나 보다. 주인공인 시우와 자신을 동일시할 법한데도….
‘산토끼는 눈을 뜬 채로 죽어 있었습니다. 시우처럼 아직 어린 토끼였습니다.’
딸애의 눈이 금방 토끼눈처럼 빨개지더니 한숨을 내쉰다. “토끼가 불쌍해.”
토끼에 대한 동정은 읽는 이의 몫이다. 시우가 느끼는 감정은 동정을 뛰어넘어 죽음이 주는 낯선 공포와 생명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죄책감으로까지 확대된다. “난 이러려는 게 아니었는데….”
집까지 어떻게 왔는지 모르게 돌아온 시우를 맞는 엄마. 엄마는 시우의 등을 다독거리고 그날 저녁 시우와 함께 산에 올라 돌무덤 앞에서 손을 모은다.
왼쪽 면에서 이상권씨의 경험이 술술 얘기로 풀려나오는 동안 오른쪽 면에서는 이태수씨의 세밀화가 무대 배경 이상의 얘기를 들려준다. 섬세한 펜화로 그린 시우의 얼굴표정은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고 최대한 절제해서 쓴 색깔이 시골의 아름다움을 꾸밈없이 전해준다. 역시 우리의 시골아이는 자연을 참 많이 닮았다.
김진경기자 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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