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역사산책/김규현 지음/339쪽 1만8000원 정신세계사
◇잉카속으로 /권병조 지음 /469쪽 2만3000원 풀빛
◇신화가 만든 문명 앙코르 와트/서규석 지음/391쪽 1만3000원 리북
티베트, 잉카, 앙코르. 한때 거대 제국으로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고 경이로운 건축물들을 세웠지만 외부의 침략을 받아 철저하게 파괴되고 잊혀진 제국이 되고 말았다. 그들의 후손은 침략자와 동화됐거나 아니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저자들은 전문 역사학자는 아니다. 그 문명을 찾아가 그 문명에 대한 이해를 쌓고 마침내 사랑하게 돼 그 ‘연정’의 힘으로 책을 냈다. 책의 형식도 비슷해 신화와 역사, 문화와 생활 등을 총괄해 묶어낸 일종의 문화사 내지 문명 안내서 성격을 띤다.
이 책들이 단순한 문명 감상기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은 세 책 모두 연대기 참고문헌 등을 충실히 실었고 표기법에 대한 해설까지 적어 책에 쏟아부은 역량과 고민의 흔적들을 엿볼 수 있기 때문.
우열을 가리긴 힘들지만 내공에서 가장 뛰어난 책은 ‘티베트 역사산책’. 10년 넘게 티베트 연구에 몰두하며 ‘티베트의 신비와 명상’ 등 몇 권의 관련 서적을 저술한 저자는 티베트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문헌을 바탕으로 뵈릭(티베트인들이 스스로를 부르는 말) 민족의 이야기 보따리를 딱딱하지 않고 잔잔하게 풀어냈다.
흔히 티베트 하면 달라이 라마와 전생 등을 떠올리지만 유인원(類人猿)으로부터 왔다는 뵈릭 민족의 기원 설화, 토착 종교인 ‘뵌뽀교’ 등 티베트 문명의 원류를 이루는 이야기는 일반인에게 낯설고 신기하다. 이어 불교의 유입으로 인한 정신세계의 변화, 토번(吐蕃) 왕조의 1000년에 걸친 번영, 그리고 1951년 중국 인민해방군의 침략으로 달라이 라마가 망명길에 오르고 위대했던 간덴 사원들이 철저히 파괴된 아픔 등이 잘 정리돼 있다.
티베트 역사가 연대기식으로 정리돼 있지만 책 곳곳에 녹아든저자의 여행 체험이 마치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줘 책 읽기가 지루하지 않다.
‘잉카속으로’는 1년간 잉카 문명을 따라 페루와 칠레를 샅샅이 답사한 저자가 잉카 문명의 각종 사료와 저작을 참고해 개인적인 여행 경험과 함께 풀어낸 책. 스페인의 침공을 받은 잉카가 제국의 부활을 꿈꾸던 마지막 왕 ‘뚜빡 아마루’의 죽음과 함께 붕괴되기까지의 역사는 침략자들의 탐욕이 한 문명을 어떻게 철저하게 파괴시킬 수 있는지 보여주는 가장 상징적인 사례다.
‘∼ 앙코르 와트’는 802년부터 1431년까지 수도 앙코르에서 번영했던 캄부자 왕조를 중심으로 7개 대도시와 1200여개의 사원을 건설하며 불교와 힌두교의 문화를 융합시킨 캄보디아의 문명사를 묶었다. 앙코르 문명은 샴족의 아유타야 왕국에 멸망한 뒤 프랑스 식물학자 앙리 무어에 의해 1861년 재발견될 때까지 밀림속에서 400년 넘게 잊혀져 있었다.
세 문명에 대해 국내 필자들이 직접 쓴 책이 거의 동시에 나온 것은 우연이지만 비슷한 운명의 행로를 밟은 이들 문명의 묘한 인연을 떠올리게 한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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