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교수는 스스로를 ‘덤덤하고 무딘데다 지독하게 재미 없는 여자’라고 평가한다. 그러다 보니 대학시절 그 흔한 미팅 한 번 해보지도 못했고 결혼시기마저 놓쳐 버렸다고 한다. 얼마 전 동기생 모임에서 “누구누구가 너를 좋아했었는데 몰랐느냐”라는 얘기가 나왔을 때도 누구일까를 따지기보다 피식 웃는 게 전부였다.
소아외과에 오래 근무하면서 박 교수는 아이들과 ‘결혼’하는 게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박 교수는 아이들의 창자기형, 식도막힘증, 항문막힘증 등 각종 선천성 기형 수술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권위자. 이 밖에아이들의 악성종양, 응급수술도 담당한다.
박 교수의 수술은 출혈이 적은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수술 노하우가 있을 법하지만 박 교수는 “오래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터득한 것”이라고만 말한다. 그러나 주위에서는 어린 환자의 수술은 평생을 좌우하기 때문에 수술 부위를 작게 해야 한다는 ‘수술 원칙’이 출혈을 줄인 것이라고 해석한다.
박 교수에게는 ‘1호’ ‘유일’ 등의 수식어가 유달리 많이 붙는다. 1977년 당시 ‘금녀(禁女)구역’에 가까웠던 외과를 지원한 유일한 여성 레지던트, 1980년 서울대 의대 첫 여성교수, 현재 유일한 서울대병원 여성 소아외과 교수….
여성으로서 부당한 대우를 받을 법도 한데 왜 외과를 지원했을까. 박 교수는 “외과만이 가진 독특한 매력 때문”이라고 답했다. 수술이 많아 ‘액티브’한데다 수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퇴원하는 환자들을 볼 때마다 즐거워진다는 것.
그동안 수술한 아이들만 어림잡아 1만명. 특별히 기억나는 환자가 있을 법도 하다. 박 교수는 연구실 책장 위에 있는 작은 부조물(浮彫物)을 가리켰다. 이국적 항구의 풍경이 박혀 있는 그 물건은 박 교수에겐 생명보다 중요한 ‘보물’이라고 한다. 무슨 추억이 깃든 것일까.
“1985년쯤 됐을 거예요. 지방에 사는 한 남자가 아이를 안고 병원을 찾아왔지요. 아이는 식도가 막혀 생명이 위태로웠고….”
그 남자는 한마디로 빈털터리였다. 수술비용은 고사하고 서울행 차비가 없어 동네사람들이 추렴했을 정도였다. 남자는 막무가내로 아이를 살려달라며 울었다. 방법을 찾아야 했던 박 교수는 어쩔 수 없이 해외입양 주선 기관에 연락했으며 그 기관에서 수술비를 내는 대신 ‘무능력자’인 남자는 친권포기각서를 써야 했다.
아이는 수술이 끝나 호전됐지만 남자의 얼굴엔 그늘이 짙게 드리워졌다. 남자는 며칠동안 사라졌다가 나타난 뒤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 돌려주고 아이를 되찾으려 했지만 돈을 구하지 못했다”며 목놓아 울었다. 그 후 남자는 아이의 병실에서 잠시도 떠나지 않았다. 기저귀를 갈면서 울고 뺨을 만지면서 울었다. 결국 해외입양주선기관에서 각서를 폐기하고 아이를 돌려줬다. 그리고 남자는 아이를 안고 떠났다.
“13년만이었어요. 소식도 없던 그 남자가 찾아온 것은….”
그 남자는 건강하게 자란 아이를 데리고 박 교수를 찾아 왔다. 그리고 원양어선을 타다 남아프리카공화국 근처 항구에 내렸을 때 박 교수를 생각하며 샀다는 부조물을 꺼냈다. 건강한 아이와 든든한 가장으로 돌아온 그들을 보며 박 교수는 그 순간 세상의 모든 평화가 몸 속으로 들어오는 듯한 느낌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아이들과 얽힌 에피소드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몇 년 전의 일이었다. 종종 아이들이 관장을 거부할 때가 있는 데 그 날도 그런 이유로 곤욕을 치르던 중이었다. 레지던트조차 혀를 내두르며 물러섰고 박 교수가 아이를 설득해 겨우 관장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아이가 몸부림을 심하게 치는 바람에 관장액과 대변이 박 교수의 온몸에 쏟아진 것. 정작 당황한 쪽은 아이의 부모였다. 박 교수는 옷에 묻은 오물을 한번 보고는 씩 웃으며 “괜찮아요 이런 게 한 두 번인가요. 원래 그래요.”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더러 ‘할머니’로 불리기도 한다. 사람 좋게 생긴데다 아이들의 응석을 잘 받아주기 때문이다. 주변에선 그런 박 교수를 보고 “의사가 너무 가벼워 보이는 거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지만 박 교수는 오히려 그게 더 자연스럽고 정겹다고 말한다.
“조카 손주가 벌써 여럿인데 할머니 맞잖아요. ‘젊은 할머니’. 얼마나 친근하고 멋져요.”
박 교수는 동기생들이 제 자식이 아팠을 때 단골로 찾는 ‘주치의’다. 동기생들의 부인들은 아이가 아프거나 이상 증세가 있으면 어김없이 박 교수에게 전화를 건다. 그러다 보니 동기생들이 부부동반으로 모임을 가질 때 홀로 참석하면서도 전혀 외롭지 않다. 동기생들의 부인이 모두 박 교수를 친구나 언니처럼 대하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머지 않아 동기생들의 손주까지 봐주는 주치의가 될 것 같다”며 웃었다.
박 교수는 앞으로도 소아외과를 떠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아이들이 가진 매력 때문이란다. 박 교수는 “아픈 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긴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활짝 웃으며 퇴원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아이들이 다른 어떤 남자보다 좋은 ‘남편’이란 행복감에 빠져든다”고 말했다.
김상훈기자 corekim@donga.com
▼박교수가 선천성 기형 아기 둔 부모에게▼
만일 내 아이가 선천성 기형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상하기도 싫지만 이런 일이 현실로 나타날 경우 대부분의 부모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넋을 놓기 십상이다.
서울대 의대 소아외과 박귀원 교수는 최근 임신중 초음파 검사를 통해 아이가 기형으로 판명되면 그 정도를 따지지 않고 무작정 생명을 지우려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걱정한다.
다음은 박 교수가 권하는 태아 또는 아이가 선천성 기형일 때 부모의 행동요령.
▽절망하면 악화된다=식도가 막히는 ‘식도폐색’을 비롯해 ‘소장폐색’,‘항문폐색’ 등과 함께 배의 피부가 만들어지지 않아 창자가 밖으로 노출되는 ‘복벽결손’ 같은 선천성 기형은 간단한 수술로 정상을 회복할 수 있다. 또 횡경막에 결함이 있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아 창자가 폐까지 침입하는 ‘횡경막 탈장’도 조기 발견하면 바로 수술을 통해 완치가 어느 정도 가능하다.
임신 중에 아이가 선천성 기형으로 판명됐을 때 임신부가 당황하면 태아에게 그 감정이 그대로 전달돼 태아 상태가 더 나빠질 수 있다. 또 임신부의 건강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으므로 절대 안정이 필요하며 남편의 위로가 가장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나서 어떤 기형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기도가 완전히 막히는 등 치명적인 기형이 아니라면 대부분 출산 후 수술을 통해 고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출산한 뒤 발견된다면=아이를 출산한 뒤에 기형이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심장에 아주 작은 구멍이 생기는 ‘심방결손’과 ‘심실결손’ 등은 가벼운 기형. 자연적으로 심장 구멍이 메워지는 경우가 많으며 그렇지 않더라도 간단한 수술로 완치가 가능하다. 그러나 대장이 사타구니 쪽으로 비어져 나오는 ‘대장탈장’ 기형은 조기 수술하지 않으면 위험해질 수도 있다.
아이에게 기형이 발견되면 빨리 아이들의 수술이 가능한 종합병원으로 옮기는 게 바람직하다.
가끔 민간요법을 이용해 섣불리 고치려 하는 경우가 있는 데 이는 절대 금물. 또 기형 사실을 안 부모가 아이를 안고 심하게 울면 공포감이 전달돼 정서장애를 유발할 수도 있기 때문에 피해야 한다.
김상훈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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