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리뷰]'집'…고달픈 삶에 깃든 따뜻한 가족애

  • 입력 2003년 2월 18일 18시 38분


서민들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는 연극 ‘집’. 사진제공 국립극장
서민들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는 연극 ‘집’. 사진제공 국립극장
무명시인인 아버지, 동네 아줌마들을 위한 ‘하우스’ 운영으로 남편을 뒷바라지하는 어머니, 남편에게 매맞고 도망 온 누나, 허풍쟁이 건달인 매형, 유일하게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진 찜질기 배달원 ‘나’, ‘잠깐’ 실수로 동침한 까닭에 결혼하게 된 ‘거대한’ 애인, 그리고 곳곳에 구원의 십자가가 번득이는 변두리 동네의 13평 반지하 집.

이 집에 사는 사람들은 행복할까?

남성중심적 가부장주의, 가족을 위한 희생을 당연시하는 ‘어머니’, 가정 폭력 속에서도 순종에 익숙한 여인, ‘날씬한’ 여성의 몸에 대한 편견, 그리고 서민가정의 경제적 궁핍.

이 집에는 한국 사회의 전형적인 문제점이 집약돼 있다. 비판적으로 바라본다면 ‘떨치고 일어나’ 뒤집어 놔야 직성이 풀릴 집안이지만, 이들에게도 살아가는 이유가 있고 삶의 보람이 있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삶이다.

정체가 모호한 잡지사이긴 하지만 그래도 취직해 ‘재택근무’를 하게 된 아버지, 손주를 임신한 ‘거대한’ 새 식구와 함께 ‘하우스’를 운영하는 어머니, 터프가이인 남편과 ‘인생역전’을 꿈꾸며 친정에서 더부살이하는 누나, 별 탈 없이 직장에 성실한 ‘나’.

작가이자 연출가인 박근형은 이들에게 자신들을 고달프게 만드는 세상을 바꿀 힘도, 의지도, 의식도 부여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들의 삶은 현재진행형이고 이들에게는 즐겁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안방과 마루와 건넌방, 그리고 집 옆의 골목까지 옮겨가며 비추는 조명은 관객의 시선을 끌고 가지만 스포트라이트가 비치지 않는 공간에서도 삶은 진행된다. 관객들은 시선이 머물 공간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고, 시선의 자유를 확보한 관객은 ‘우리’의 일상사를 더욱 실감나게 읽어낼 수 있다.

그리고는 고되고 서글퍼야 할 조건 속에서 즐겁고 행복한 순간들만 골라내, 약간은 과장된 몸짓으로 수없이 관객의 웃음보를 터뜨리게 하는 연출가와 배우들의 비상한 재주에 감탄하며 동의할 것이다. ‘그래, 가족은 소중하다’.

이들을 고되고 서글프게 만드는 사회구조의 문제는 어찌 하냐고?

“그건 다른 연극에 묻자.”

23일까지. 평일 오후 7시반, 토 일 공휴일 오후 4시.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1만5000∼2만원. 02-2274-3507∼8

김형찬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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