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248…입춘대길(9)

  • 입력 2003년 2월 20일 18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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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 쪽에서 올라가면 병풍을 세워 놓은 것 같은 산이 눈앞에 턱 나타나고,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답다. 멀리서 보면 아름답기만 하지만, 올라가기 시작하면 톱니처럼 뾰족뾰족한 봉우리가 앞을 가로막고, 얼마나 험하고 고된지 모른다. 외금강에는 신계사란 절이 있는데, 1400년 전에 보운조사(普雲組師)가 세웠고, 임란 때는 서산대사가 승병을 지휘했던 곳이다.

금강산에는 우째 가면 되는 데예?

부산에서 고성까지는 배를 타고 가고, 배에서 내리면 등산로 입구가 있는 온정리까지는 버스를 타고 20분, 걸어서 가면 한 시간 반은 걸린다. 하지만 금강산 전기철도가 개통되면 철원에서 내금강까지 육로로 갈 수 있게 된다.

며칠이나 걸리는 데예?

배에서 하루를 자야 되니까 이틀이지.

가보고 싶어예.

…음….

혼자서 갈 겁니다.

…같이 가보자.

처자식한테 거짓말하고 말입니까?

…설악산 얘기 좀 해보이소.

설악산은 철철이 풍경이 전혀 다르다. 봄에는 신록이 우거지고, 여름에는 초록이 무성하고,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순백의 세계가 된다. 기암괴석과 폭포 있는 데 구경시켜 주꾸마. 아이고, 우리 미령이한테 보여주고 싶은 데가 하도 많아서….

그 사람은 젖가슴 사이로 손을 밀어 넣고, 눈 감은 나의 맨살에 그의 목소리가 스며들었다. 선녀가 놀다 간다고 할 정도로 경치가 좋다. 물도 맑고, 깨끗한 호수도 있고, 지금도 그 사람의 목소리가 내 피부에 발진처럼 돋아 있다.

그 사람이 소진에게 해 준 일이라고는, 면서기 조용택을 시켜 이름 석 자를 적은 종이를 건네준 것뿐. 하지만 나는 원망하지 않았다. 원하고, 애가 타도록 그리워도 원망만큼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사람은 자기가 지은 딸의 이름을 한 번 불러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뜨고 말았다. 아이고 이럴 수가! 세상에 자기 아버지가 한 번도 불러주지 않은 불행한 이름이 어디 있을까! 소진! 소진아! 아이고! 소진아, 가엾은 내 새끼!

그 사람이 단독을 앓고 있다는 소문은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덧없이 죽어버리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렇게 병이 무거울 줄 알았으면 쫓겨날 각오를 하고서라도 그 집 문턱을 넘어, 이 아이에게 한번만이라도 아버지를 만나게 해 주세요, 라고 땅에 머리를 대고 빌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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