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249…입춘대길(10)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까 아버지의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다. 한 마디라도 좋으니까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었다. 임종을 지킬 수 있도록 허락해 주지 않는다면, 최소한 죽은 얼굴이라도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 여자는 운명한 지 사흘 만에 그 사람을 태워버리고 말았다. 아이고, 몹쓸 여자! 그 사람이 시신을 잘도 태워버렸네!

그날, 나는 소진을 안고 그 사람이 매일 드나들었던 삼나무집에서 밀양강을 내려다보았다. 살얼음이 낀 강으로 낚싯배가 천천히 나아가자 강가에 모인 동네 사람들이 에헤 에헤요 얼여차차, 에헤요 하고 소리를 띄웠다. 사공이 삿대질을 늦춰 배가 멈췄다. 꽉! 꽉! 꽉! 백조가 울면서 고개를 쭉 내밀었다 구부렸다 했다. 그 사람의 아들이 하얀 상자를 물로 기울이는 순간, 사락사락 사락사락, 삼나무 가지가 흔들리고, 사락사락 사락사락, 바람 속에서 그 사람의 모습을 잃었다.

유품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내게는 붓 한 자루, 고무신 한 켤레 남기지 않았다. 뼈 한 조각이나마 나눠 받았다면, 끈에 매달아 목에 걸고 젖가슴 사이에 끼워두었을 텐데. 아니다, 사실은 그 사람의 시신을 훔치고 싶었다. 내 이부자리에 눕히고, 가슴 위에 포개진 손을 풀고, 고동이 들리지 않는 가슴에 머리를 묻는다. 등에 팔을 두르고, 입술에 입술을 맞대고, 머리칼을 쓰다듬으면서 썩어 녹아 내릴 때까지 꼭 껴안고 있는다. 그리고 껍질을 벗긴 채 며칠이고 그냥 내버려둔 굴 같은 눈을 마음껏 들여다보고, 귀에 입맞춤하면서 속삭인다. 아아, 당신, 이제야 겨우 나만의 것이 되었군요, 아아, 사랑하는 당신, 내 오직 한 사람뿐인 연인, 나만의 남자, 내 모든 것을 바친 남자, 아아, 당신, 사랑해요 사랑해요 정말 사랑해요.

당신은 내 몸을 뒤집고, 엉덩이를 들고 댕기 머리를 비틀어 올리고, 단번에 내 안으로 온다. 응, 거기야 거기! 숨이 붙어 있는 한, 깊고 깊은 우물 속으로, 우리는 언제든 떨어질 수 있어요, 저 바닥으로, 빛이 닿지 않는 저 깊은 바닥에서 농을 거는 검정 물고기들처럼 팔딱팔딱, 당신과 나의 경계가 없어지도록 팔딱팔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