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냐면…'펴낸 김열규 교수"한국인의 웃음 속엔 철학이"

  • 입력 2003년 2월 24일 20시 49분


김열규 교수. -동아일보 자료사진
김열규 교수. -동아일보 자료사진
한국인의 정체성과 ‘문화 코드’를 꾸준히 탐구해온 인제대 국문학과 김열규 교수(71)가 이번에는 ‘웃음’으로 눈을 돌렸다. 김 교수는 최근 펴낸 저서 ‘왜 사냐면, …웃지요’(궁리)에서 민담, 소설, 풍속화 등에 나타난 한국인의 웃음과 그 의미를 풀어냈다.

김 교수는 “한국 사회가 요즘은 웃음의 흉년에 시달리고 있지만, 실제로 한민족은 기지와 유머가 있는 민족”이라고 집필동기를 밝혔다.

이 책에 나오는 오성 대감 이항복의 이야기는 이런 한국인의 심성을 잘 말해준다. 하루는 오성 대감이 조례에 늦자 다른 신하들이 이를 비난했다. 오성 대감은 이에 대해 “오는 길에 남자중과 여승이 서로의 머리를 움켜잡고 싸우는데, 소경이 이를 보고 말리고 벙어리가 이들의 시시비비를 가리더라. 이를 보다가 늦었다”고 변명했다. 중신들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오성 대감의 허물을 용서했다. 지엄한 조정에서도 유머는 통했다. 그러나 요즘은 상황이 다르다.

이 책은 웃음을 세 가지로 분류한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사교적인 웃음, 날카로운 풍자의 웃음, 그리고 삶의 부담을 덜어주는 웃음, 즉 유머다. 이 중 가장 상위의 웃음은 유머. 특히 한국인의 유머는 독특하다. 김 교수는 “폭소가 아니라 잔잔한 미소로 현실의 좌절과 고난을 잊게 만드는 것이 한국인의 유머”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느닷없이 돈을 번 ‘졸부(猝富)’, 느닷없이 출세한 ‘졸권(猝權)’들이 근엄한 척 자신들을 치장하는 바람에 요즘 사회에서 웃음이 사라지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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