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부모들이 장롱 안에서 잠들어 있는 아이를 발견해 본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들 눈에는 비좁아 보여도 저 혼자 들어가기에 딱 알맞은 작은 공간에서 노는 것을 좋아한다. 다만 주위에 믿을 만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고 어둡지 않은 곳이어야 한다. 어두컴컴한 곳에서는 놀이에 빠지기 전에 무서움부터 밀려오니까.
책 표지를 열면 위에서 내려다 본 유치원이 한눈에 보이고, 유치원 이름과 함께 “놀러 들어오지 마시오”라는 팻말이 눈에 띈다. 아이들 몇이 운동장에서 놀고 있지만 서로 어울려 놀지 않고 제각각 무표정한 얼굴이다. 그제서야 재미난 것이 아닌 무서운 것 두 가지(벽장과 쥐할멈)를 알려주는 글이 보인다.
유치원 선생님은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을 때 벽장에 가두는 벌을 준다. 위 아래가 나뉘어진 벽장 속에서 아이들은 무릎을 꿇고 앉아 “잘못했어요”라는 말을 해야만 다시 빛을 볼 수 있다. 연필로 그려진 듯한 그림은 동무에게 닥친 불행이 언젠가는 자신의 불행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아이들의 마음을 대변하듯 어둡고 침울하다. 거인 같은 선생님 손에 잡혀 벽장으로 끌려가는 아이는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다. 벽장 속에서는 쥐할멈이 쥐 떼들을 데리고 동무를 습격할지도 모르는데, 빨리 “잘못했어요” 하고 나와야 할텐데…. 무서운 쥐할멈을 이겨낼 수 있을지 남아 있는 동무들도 걱정과 두려움으로 표정이 굳어 있다.
사토시와 아키라는 낮잠 시간에 선생님께 혼이 나서 벽장에 갇히게 되지만, 둘이 있으니 없던 용기도 생기고 생각할 여유도 생긴다. 밖에서 반성해도 되는데 벽장에 가두는 선생님이 밉다. 무서워서 그냥 잘못했다고 말하려다 보니 괜히 억울한 맘도 든다. 둘은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어둠이 주는 공포를 애써 잊어보려 한다. 하지만 쥐할멈이 그들을 가만둘 리가 없다. 두 아이들과 쥐 떼들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은 벽장을 벗어나 터널과 차 한 대도 없는 고속도로를 지나고 퀴퀴한 하수구까지 이어진다. 책을 보는 아이들도 함께 숨이 가쁘다. 빛과 어둠의 대비만을 보여주는 흑백의 그림들은 두 아이의 긴박감을 독자에게 전달하는데 효과적이다. 마침내 쥐할멈을 이겨낸 아이들. 결국 두 아이에게 사과하고 문을 열어주는 미즈노 선생님. 두 아이의 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것은 그 모험이 진짜였다는 것을 말해주는 증거다.
아이를 사랑하는 미즈노 선생님은 앞으로 아이를 벽장 안에 가두지 않고 밖에서 반성하게 할 것이다. 사토시와 아키라 덕분에 벽장은 무서운 곳이 아닌 재미난 곳으로 바뀌었으니까.
책의 마지막 펼친 면에는 첫 장과 같은 유치원 전경이 나온다. 선생님과 아이들 사이에 감돌던 긴장이 풀리자 유치원 정문에 걸어 놓았던 예의 그 팻말은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놀러 들어와’도 괜찮다는 듯. 운동장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은 훨씬 더 많아졌고, 표정들도 밝다. 앞치마를 두르고 아이들과 하나가 된 선생님도 보인다. 무서웠던 벽장과 쥐할멈이 재미난 것으로 바뀐 후의 유치원은 이렇듯 평화롭다.
오혜경 주부·서울 금천구 시흥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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