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월간문학지 ‘문장’에 발표된 채만식의 우화소설을 그림책으로 새롭게 엮은 것이다. 어린 독자를 위해 원문에 실린 한자어와 속어 어려운 옛말을 현대어법에 맞춰 고쳤다.
우화하면 ‘이솝우화’ 때문인지 동물이야기를 연상하게 된다. 이 작품도 왕치와 소새와 개미에 대한 얘기다. 왕치? 소새? 개미는 친근한 캐릭터지만 왕치와 소새는 요즘 아이들에게 낯설다. 처음 그림만 보고 왕치와 소새를 뒤바꿔 생각하는 아이들도 많다. 왕치는 퉁퉁하고 큰 방아깨비를 이르며 소새는 물새의 일종으로 보면 된다.
옛날 옛적, 거기 어디서, 이들은 모두 한 집에 살고 있었는데 지금의 모습과 사뭇 달랐다. 소새는 괴팍하고 인정없으나 부지런했으며 개미 역시 부지런하고 너그러우며 낙천적이었다. 그러나 주인공 왕치는 부지런하지 못하여 늘 친구들에게 눈치와 구박을 받는다.
가을이 되자 셋이 돌아가며 잔치를 마련하기로 하고 첫날은 개미가, 둘째날은 소새가 잔칫상을 차려 배불리 먹는다. 그러나 왕치는 고생만 하다가 잉어에게 잡아먹히고 만다.
소새는 우연히 잉어를 잡아와 개미와 함께 먹기 시작한다. 중간쯤 먹었을 때, 왕치가 풀쩍 뛰어나오면서 능청맞게 하는 말이 가관이다.
“휘! 더워! 어서들 먹게! 아, 이놈의 걸 내가 잡느라고 어떻게 앨 썼던지! 에이 덥다! 어서들 먹게!”
왕치의 너스레에 소새는 주둥이가 한 자나 뚜하니 나오고 공짜를 좋아하던 왕치는 빈대머리가 훌러덩 벗겨지고 만다. 개미는 우습다 못해 대굴대굴 구르다가 그만 허리가 부러진다. 이것이 이들 생김새에 얽힌 내력이다.
우화가 시사하는 덕목은 도덕적 교훈이 아니라 인간행동의 관찰에 의거한 세속지혜를 들려주는 경우가 많다. 세상살이에 대한 일종의 병법(兵法)이라 할 수 있다(유종호의 이솝전집).
이 책의 주제 역시 게으르고 뻔뻔스러운 왕치보다는 부지런하고 너그러운 개미가 환영받는다로 보면 될까? 아니면 조화로운 공동체 생활을 하자, 이기적인 태도를 버리자일까?
어쨌거나 작가만의 판소리계 사투리와 말맛이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연필과 펜으로 스케치하고 아크릴 물감으로 컬러링한 그림 역시 캐릭터들의 개성을 한껏 도드라지게 표현해 보는 재미를 준다. 펼친 면을 가득 채운 대담한 구도와 역동적인 표현의 힘은 글의 재치, 유머와 어우러진다.
왕치가 잉어에게 잡아먹히는 장면, 소새가 잉어의 눈을 꿰어 차는 장면, 왕치가 잉어의 뱃속에서 풀쩍 뛰어나오는 장면을 자꾸 들여다보면 아이들과 왕치, 소새는 어느 새 친구가 되어 있을 것이다.
김진경기자 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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