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연극 '지팡이를 잃어버린 채플린'

  • 입력 2003년 3월 4일 17시 53분


서민들의 희망과 좌절을 재기발랄한 에피소드로 엮은 연극 ’지팡이를 잃어버린 채플린’.사진제공 DAL미디어
서민들의 희망과 좌절을 재기발랄한 에피소드로 엮은 연극 ’지팡이를 잃어버린 채플린’.
사진제공 DAL미디어
임신을 할 수 없어 작은 방석을 뱃속에 넣고 임신한 시늉을 하며 살아가는 여인, 지하철에 물건을 팔러 나왔지만 용기가 없어 머뭇거리기만 하는 청년, 잘 살고 싶었지만 세상살이가 너무 힘들어 다리 위에서 뛰어내리려는 샐러리맨.

누구나 욕망과 현실이 어긋나는 아픔 한 두 가지씩은 가지고 있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대한 원망과 좌절이 지나칠 때 그 불만은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런 이들을 이야기거리로 삼아 ‘못난 녀석들’이라고 조롱한다, 자신의 ‘좌절감’은 속으로 감춘 채. ‘지팡이를 잃어버린 채플린’이란 연극 제목의 ‘잃어버린 지팡이’는 이런 좌절과 결핍을 의미한다.

배우 서현철이 극작 겸 연출가로 나서 이런 이야기를 무대에 올렸다. ‘인류 최초의 키스’에서 냉혹한 심리학자, ‘강 건너 저 편에’에서 한국이 싫어 이민 가려고 갈등하는 청년, ‘돐날’에서 세상사를 돈으로만 생각하는 사업가 등의 역할로 빼어난 배우의 기량을 선보였던 그가 직접 쓰고 연출한 첫 작품은 어떨까?

그는 지하철에서, 동네 골목에서, 공원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작은 에피소드들로 엮어 작품을 만들었다. 불임, 실업, 자살 등 무겁지만 누구나 한두 번 생각해 봤음직한 문제들을 재기발랄한 대사와 몸짓으로 흥미 있게 엮었다. 주제는 일관되지만 다소 나열적인 구조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 에피소드들을 연결하는 ‘막간극’이 눈에 뜨인다.

지팡이를 짚고도 걸음을 옮기기 어려울 정도로 노쇠한 노인이 힘겹게 언덕 위의 벤치에 올라와 삶은 달걀을 까서 먹는다. 그의 희망은 그 작은 달걀을 잘 까서 먹는, 아주 소박한 것. 그러나 떨리는 손은 눈 앞에서 달걀을 떨어뜨리고 그의 갈망은 수 차례에 걸친 ‘막간극’에서 단 한 번도 이뤄지지 않는다. 이 작은 세속적 갈망과 이를 이룰 수 없는 현실적 결핍의 긴장은 이 ‘막간극’ 사이사이 ‘막중극’의 주제를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눈 앞에 있는 삶은 계란을 먹을 기쁨에 흐뭇해 하는 눈길, 그리고 손에서 미끄러져 저 편으로 날아간 달걀을 멀리 바라보며 소금만 찍어 먹는 선량한 갈망의 눈빛. 이런 소박하면서도 미묘한 ‘눈’의 연기를 일품으로 해 내는 것은 극작 겸 연출가인 서현철이다.

“연출보다는 연기가 자신의 갈 길인 듯하다”는 그의 말은 물론 겸사이겠지만, 아직은 극작이나 연출보다 그의 연기가 일품인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30일까지. 인켈아트홀 1관. 평일 오후 7시반, 토 일 공휴일 오후 4시 7시(월 쉼). 1만∼1만5000원. 02-765-1638

김형찬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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