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갑자기 이 모든 것이, 어디선가 경험한 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해 이른 봄, 오스트리아의 호반 휴양지 할슈타트의 호텔 발코니에서 아침 경치를 즐기는 중이었다. 이 나라의 경축일이니까 이른 아침부터 축포를 쏘고 밴드가 마을을 다니는 것이겠지…. 그런데 짧은 순간 동안 경험한 그 ‘소리의 풍경’은 너무도 정확히 한 음악작품과 닮아있었다.바로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1번, 1악장 서두의 도입부였다.
새벽 어스름이 밝아오는 듯한 바이올린의 떨림, 이어 새들의 지저귐을 묘사하는 목관, 쿵 하는 타격음, 멀리서 들려오는 팡파르. 이 음악에서 말러가 묘사하고자 한 것이 바로 이런 호반마을의 봄, 아침 풍경이었으리라. 벼락에 맞은 듯 한참동안 미동도 않고 서 있었다.
말러의 작업실은 거의 언제나 호반에 자리잡고 있었다. 3번 교향곡을 쓰던 그의 작업실로 지휘 제자인 브루노 발터가 찾아가자 그는 “이 경치를 이미 악보에 모두 옮겨놓았네!”라고 자신하기도 했다.
1번 교향곡으로 돌아가보자. 새벽 풍경의 묘사가 끝나면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것은 온갖 꽃들이 피어나는 봄날 들판 풍경의 찬미다. 초기 가곡 ‘아침 일찍 들판을 걸으며’ 선율을 그대로 옮겨놓은 이 첫 악장은 그 자체로 가슴떨리는 봄날의 환희와 청춘의 동경을 노래하고 있다.
디지털 녹음 중 가장 돋보이는 이 작품의 명반은 에도 데 바르트 지휘 미네소타 오케스트라의 것(1990·버진). 이 악단의 소리는 말러의 악보에 착 녹아 붙어있는 듯 자연스럽다. 현악의 정밀한 앙상블과 목관의 다양한 표현이 특히 일품. 이 음반을 찾기 힘들다면 리카르도 샤이가 지휘한 로열 콘서트헤보 오케스트라의 음반(1996·데카) 도 나쁘지 않다. 이렇다 할 만한 지휘자의 자기주장을 찾기 힘든 것이 유일한 흠이랄까. 속이 잘 영근 로열 콘서트헤보의 탱탱한 사운드도 한껏 제 맛을 낸다.
80년대 우리나라에는 오자와 세이지가 지휘한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아날로그 녹음(1977·DG) 이 카세트 테이프로 발매돼 젊은 음악팬들의 귀를 번쩍 뜨이게 했었다. 특히 폭발하듯 밀어붙이는 끝악장이 압권이었는데, 유감스럽게도 CD시대에는 종적을 감춰 아쉬움을 주기도 했다. 최근 이 녹음이 염가 CD로 재발매됐다. 20년만의 재상봉이랄까. 음반 수집가에게는 이런 맛도 ‘양보할 수 없는 재미’에 든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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