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뮤지컬로 지금까지 두 번 봤다. 1920년대 말의 시카고가 배경인 이 작품은 브로드웨이 뮤지컬 중에서도 안무가 화려하고 섹시한 뮤지컬로 꼽힌다.
뮤지컬 배우는 아무래도 뮤지컬 영화에 대해 평이 인색하기 마련이지만, 영화 ‘시카고’는 지금까지 내가 본 최고의 뮤지컬 영화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르네 젤위거, 캐서린 제타존스, 리처드 기어가 직접 춤추고 노래했다는 얘기를 듣고 과연 잘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영화를 보니 세 사람 모두 뮤지컬 배우를 해도 될 만큼 훌륭한 노래와 춤솜씨를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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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뮤지컬 전문 배우보다 더 능수능란한 제타존스의 춤은 정말 ‘제대로’였다. 제타존스는 춤 대역을 쓰지 않았다는 것을 관객에게 확실히 보여주기 위해서 일부러 얼굴이 드러나는 짧은 보브 헤어스타일을 고집했다고 한다. 젤위거는 농염하면서도 약간 어리숙한 순진함이 뒤섞인 록시 역에더할나위 없이 어울렸다.
영화는 노래와 춤은 물론 스토리와 순서까지 뮤지컬 그대로다. 스타 배우 벨마(제타존스)가 관능적인 춤과 함께 유명한 뮤지컬 넘버 ‘올 댓 재즈’를 부르며 시작하는 첫 장면부터 똑같다. 주인공 록시(젤위거)는 스타를 꿈꾸는 코러스걸인데 우발적으로 정부를 살해하고 감옥에 간다. 그곳에서 록시는 동경하던 밤무대 스타 벨마를 만난다. 벨마 역시 여동생과 남편을 죽인 죄수 신세다. 록시는 언론을 이용해 100% 승소율을 자랑하는 변호사 플린(리처드 기어)을 만나고 순식간에 비운의 여죄수로 둔갑해 벨마를 제치고 신문 1면을 장식하는 스타가 된다.
“재판도 언론도 모두 쇼비지니스”라는 플린의 대사처럼 ‘시카고’는 변호사의 ‘말발’에 놀아나는 언론과 사법 제도를 비꼰다.
누구나 감탄할 영화의 압권은 플린과 록시의 기자회견 장면에 등장하는 꼭두각시 인형춤일 것이다. 뮤지컬에서도 가장 박수를 많이 받는 장면인데 플린은 록시를 무릎에 앉힌 뒤 복화술을 하듯 노래를 부르고, 록시는 이에 맞춰 인형처럼 입만 벙긋거린다. 이 때 부르는 곡이 록시의 정당방위를 주장하는 ‘우리는 둘 다 총을 잡으려 했지(We Both Reached For the Gun)’인데, 이를 받아적던 기자들은 어느새 줄에 매달린 인형이 되어 코믹한 군무를 춘다. 줄인형을 조종(언론플레이)하는 것은 물론 플린. 영화는 편집과정에서 기어의 노래와인형 노릇을 하는 젤위거의 입모양을 ‘더빙’할 수 있지만, 라이브 무대에서는 두 배우가 완벽하게 입모양과 노래를 맞춰야 하기 때문에 이 장면 만큼은 뮤지컬 쪽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법정에서 플린이 검사와 공방을 벌이는 장면은 무대위에서 열정적인 탭댄스를 추는 플린의 모습으로 바뀐다. 뮤지컬엔 없는 탭댄스 장면은 리처드 기어라는 배우를 위해 만든게 아니었을까?
뮤지컬에서는 공간제약상 록시의 현실과 상상 장면이 한 무대에서 진행된다. 하지만 영화는 드라마가 진행되는 ‘현실의 세계(교도소)’와 록시의 상상이 펼쳐지는 ‘환상의 세계(쇼무대)’를 자유롭게 넘나들어 뮤지컬보다 다양한 볼거리를 준다. 여죄수들이 부르는 ‘셀 블록 탱고’의 인트로는 교도소 수돗물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로 시작되지만 이는 어느 순간 어쿼스틱 반주로 바뀌며 화려한 쇼무대로 전환되는 식이다.
‘시카고’는 뮤지컬 영화라는 장르에 대해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깰 수 있는 재미있는 영화다. 그리고 이 영화 덕분에 뮤지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뮤지컬 '시카고' 영국 공연팀 7월 내한무대▼
인기 브로드웨이 뮤지컬 ‘시카고’의 런던 웨스트엔드 공연팀이 내한 공연을 갖는다.
극단 신시 뮤지컬 컴퍼니는 “현재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상영중인 뮤지컬 ‘시카고’의 공연팀을 초청해 7월3일부터 8월 3일까지 한달간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한다”고 밝혔다. 배우들 외에도 15명으로 구성된 밴드 등 50여명의 스태프들도 함께 내한한다.
당초 신시측은 뮤지컬 영화 ‘시카고’의 개봉 일정에 맞춰 내한 공연을 추진하려 했으나 공연장 대관 일정이 여의치 않아 연기됐다.
뮤지컬 ‘시카고’는 한국에서는 2001년 신시에서 번역극으로 만들어져 초연됐다. 미국 뮤지컬계의 거장 밥 포시의 대표작인 ‘시카고’는 1975년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됐던 작품. 살인, 탐욕, 불륜, 욕망 등을 재즈의 선율과 화려한 춤으로 담아냈다. 1996년 브로드웨이에서 리바이벌 된 이 뮤지컬은 토니상 6개 부문을 받은 이후 지금까지 7년째 인기리에 장기 공연중이다. 런던 웨스트엔드에서는 1997년 무대에 올려져 지금까지 공연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지난달 개봉한 영화 ‘시카고’의 인기에 힘입어 뮤지컬을 보려는 관객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인터넷 뮤지컬 사이트 브로드웨이 닷컴에 따르면 뮤지컬 ‘시카고’는 인기 뮤지컬 ‘맘마 미아’를 제치고 ‘라이언 킹’에 이어 예매 순위 2위를 달리고 있다.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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