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현재 토론토에서 활동 중인 일러스트레이터 박재현씨(38)의 데뷔작으로 7월 그라운드우드에서 출간됐다. 책이 나오자마자 ‘매클린’ 등 주요 미디어가 서평을 다뤘고, 시내 도서관들에선 독회가 열렸다. 아울러 가장 권위 있는 총독문학상의 어린이책 최종 후보에 올랐으며, 최근엔 또 다른 그림책상의 수상작으로 선정되는 등 경사가 겹쳤다.
“첫 작품이 좋은 반응을 얻어 너무 기뻐요. 무엇보다 도서관 초청을 받아 어린이들에게 책을 읽어준 뒤 대화를 나눌 때 참 행복했어요. 우리 얘기를 다룬 그림책이 외국 어린이들에게도 재미와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니까요.”
원래 그림과는 거리가 멀었다. 연세대 불문과를 졸업한 뒤 10년간 외국인 기업의 ‘잘나가는 커리어우먼’으로 일하던 그는 6년 전 어느 날 캐나다로 건너가 미술공부를 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주변에서 말렸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그림에 대한 꿈이 있었어요.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해보자는 생각만으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땅에 오겠다고 결심했죠. 물론 고생도 많이 했지만 좋아서 하는 일이니 즐겁게 감수할 수 있었습니다.”
학비와 생활비가 싸다는 이유로 선택한 캐나다행. 오크빌의 셰리던 칼리지에서 일러스트레이션 과정을 수석으로 마쳤다. 졸업 후엔 ‘맨 땅에 헤딩하기’ 식으로 주류 사회의 일간지인 ‘토론토 스타’와 ‘글로브 앤드 메일’의 아트 디렉터를 직접 찾아가 작품을 보여주고 일감을 따냈다. 동양인에, 경력도 없는 ‘초짜’였지만 이곳에선 오직 그림만으로 그를 평가하고 인정해 주었다.
“그림을 펼쳐놓을 곳도 없는 좁은 방에서 꼬박 6개월이 걸려 첫 그림책을 완성했지요. 따로 에이전트를 둘 형편도 안 돼서 20군데 출판사에 직접 자료를 보냈는데 열흘 만에 책 내자고 연락이 왔더군요.” 미국이 여러 문화를 녹이는 ‘용광로’라면
캐나다는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모자이크’ 사회를 지향한다. 서점에도 중국 일본 인도 등의 아시아 문화를 보여주는 그림책이 많은데 한국 책은 없어 아쉬웠다. 그래서 전래동화를 하기로 마음먹었다.그는 제소(석고가루)를 발라 입체감을 살린 다음 아크릴 물감을 채색하는 기법을 사용한다.
그가 사용한 파랑, 빨강, 오렌지 등 강렬한 색채에서는 환상적인 분위기가 느껴지고 생동감과 에너지도 넘친다. 현지에서는 한국의 민화적 전통을 바탕에 둔 독특한 그림과 이야기를 재치 있게 풀어내는 솜씨 등 글과 그림이 두루 뛰어나다는 평을 받았다. ‘호랑이와 곶감’은 올봄 한국프뢰벨에서 한국어판으로 선보인다.
“어른들 눈으로만 그림책을 골라주면 아이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제한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선 추상적이든, 기괴하든 온갖 종류의 그림을 접하게 한 다음 아이들이 스스로 좋아하는 그림책을 선택하도록 해줍니다. 한국에선 밝고 예쁜 그림책만 권해서 그런지 그림책 스타일이 획일적인 것 같아요.”
CD재킷과 책 표지 디자인까지 프리랜서로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 그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은 그림책. 들어가는 노력과 시간에 비해 돈 벌기는 힘든 고된 작업이지만, 하면 할수록 신나고 보람을 느끼기 때문이다. 편안한 일상을 버리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새 삶에 도전한 그는 이제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로 조금씩 발돋움하고 있다.
토론토=고미석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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