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이 좋아 직업도 바꾸더니 이번엔 소설인가?
“사실, 마지막에 하고 싶은 일은 소설쓰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미술품 경매회사 서울옥션의 김순응 대표(50). 그는 3년 전까지만 해도 잘 나가는 은행원이었다. 하나은행에서 종합기획부장, 여의도 중앙지점장, 싱가포르 홍콩 등 해외법인에서 근무했으며 자금본부장으로 일하다 돌연, 사표를 냈다. 23년 직장생활 중 마음 한 구석에 있었던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라는 꿈을 이룬 셈. 그는 자신이 은행원으로 남아 있기에는 ‘끼가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스킨스쿠버, 승마, 수영 등 스포츠분야에서부터 음악 미술에 이르기까지 그의 관심분야는 넓다.
―끊임없이 뭔가를 찾는 본인의 ‘끼’가 때로 부담스럽지 않나?
당시 나이 마흔일곱은 인생의 시계로 치면 오후 다섯시쯤 될까. 그 나이에 돌연한 변신은 배부른 자의 만용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그의 변신은 오래 전부터 준비돼 온 것이었다. ‘45세 정년’이라는 말의 약자인 ‘사오정’이 횡행하는 요즘같은 시대에 정년이 없는 평생 직업을 갖고 싶었다는 그의 노력과 변신에 눈길이 가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생업이외에 좋아하는 일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 들꽃을 연구하든, 역사를 공부하든, 십자수를 하든 말이다.”
그는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도 ‘노력’이라 했다. 끊임없는 시도와 탐색을 통해 기회를 찾다보면 반드시 온다는 것이다. 그에게 그것은 미술이었다.
충북 진천의 가난한 시골 집안에서 태어나 예술적 세례라곤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어릴 적 읽었던 동화 ‘플란다스의 개’에서 주인공 소년 네로가 삶의 위안으로 여겼던 성당 안 루벤스의 성모 마리아 그림 앞에서 죽어가는 마지막 장면이 그를 미술쪽으로 이끄는 단초역할을 했다. 좀 순진한 회고(^^) 이긴 하지만 어떻든, 그는 철이 들면서 틈만 나면 미술 서적을 탐독했고 미술관 화랑 박물관으로 순례를 다녔다. 맘에 드는 그림이 있으면 사고싶은 충동에 밤잠을 못 이뤘다. 그러다 은행 고객이자 미술품 수집가로 수십여년 인연을 맺어 온 가나화랑 이호재 사장을 만난 자리에서 서울옥션 새 CEO를 구한다는 소식을 우연히 듣고 별 고민없이 사표를 던졌다.
“화랑과 작가에게만 의존해 오던 미술품 판매를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논리에 맡기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우리나라엔 그것이 성숙하지 못했다. 이 화랑에서 500만원 주고 산 미술품이 다른 화랑에서 100∼200만원에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미술에 대한 정이 딱 떨어진다. 뭔가 의미있으면서도 취미를 살릴 수 있는 일을 평생 할 수 있을 것 같아 직업을 바꿨다.”
미술품 구매가 아직은 대중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경매사업은 아직 어려움이 많지만, 그는 취임 2년만에 매출을 50억원에서 150억원으로 끌어 올렸고 지난해 첫 수익까지 냈다.
“막상 취미를 업으로 삼으니, 좋더냐”고 물었더니 그는 “꼭 좋지만은 않다. 그냥 아마추어로 남아 있을 걸 하는 생각도 가끔 든다. 하지만, 재미있다. 긴장된다. 한번 사는 인생, 평생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았으니 후회없다”고 말했다. 그를 인터뷰하고 나오면서 ‘좋아하는 일도 노력해야 찾아진다’는 그의 말이 오래 맴돌았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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