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 책상 위 노란불을 밝힌 스탠드를 담은 사진 옆에다, 작가는 ‘밤에 일하다가 한두 번은 꼭 앞마당 잔디밭에 나가본다. 별들의 잔치를 감상하고 몸 속 수분을 덜어내기 위해서’라고 쓴다.
작가는 본가 안방에 걸린 흑백 사진을 자신의 손으로 다시 그려낸다. 군인 정복을 입은 아버지와 흰색 저고리 차림의 어머니에게서 그는 자신과 누나의 모습을 다시 읽어낸다. ‘어찌 보면 내가 누나와 함께 찍은 사진 같다’고.
변기에 담긴 복숭아꽃과 기와를 얹은 호사스러운 담, 행인을 유혹하는 탐스러운 사과, 겨울의 옥수수밭까지 작가가 담은 단정한 풍경에서는 길들여지지 않는 운치가 배어난다.
작가가 고향 서울을 떠나 강원 원주에 자리잡은 지 이제 3년째. 이 책에서는 매일매일 벌어지는 치열한 속도전과 기계적인 일상을 떠나 ‘느림’과 ‘게으름’의 아슬한 경계에서 작가가 만끽하는 삶의 여유가 담겨 있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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