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류희영(63·이화여대 조형예술대 교수) 의 그림은 지극히 단조롭지만 속살은 그렇지 않다.
우선 바탕색부터 그렇다. 두 가지 이상의 물감을 조합해 제3의 색을 만든 뒤 여섯 번 이상 덧칠한다. 그러면 색은 중성화되고 채도가 낮아진다. 침묵의 색이고 절제의 색이며 핏기를 잃은 차가운 색이다. 그가 유화물감만을 선호하는 이유는 중후한 색채와 깊이 있는 밀도 때문이다. 한번 칠해 20분이면 마르는 아크릴 물감이 주는 경박함과 피상성과는 전혀 다르다고 한다.
유씨는 20대 초반에 국전에 데뷔하고 30대 초반에 대통령 상을 받는 등 일찍이 주목을 받았으나 이후 시대 흐름과 무관한 비정형 추상의 외길을 걸어 왔다. 초기에는 몬드리안의 회화에서, 후기에는 우리 옛 건물의 단청색에서 영감을 얻었다.
근래 작품에 곧잘 등장하는 사선(斜線)은 1990년대 초반에 마련한 충북 옥천 작업실에서 내다 보이는 완만한 경사의 산등성이를 단순화한 것이다.
그의 개인전이 5년만에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열린다. ‘정신의 창으로서의 색면회화’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더욱 절제되고 따뜻한 느낌의 작품들이 나온다. 크기 200∼300호에 이르는 대작이면서도 일절 제목이 없어 관람객들에게 상상의 폭을 한층 넓혀준다. 나이가 들면서 작품 제목을 넣는 것조차 부담스럽고 거추장스러워졌다는 것이 작가의 이야기. 12∼23일. 02-734-6111∼3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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