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은 독특한 형식을 지닌 영화의 음악을 맡은 사람은 미국의 작곡가 필립 글래스. 그는 전위음악계에서 세계적 명성을 지니고 있는 작곡가다. 넓게는 ‘미니멀리즘’의 영역에서 이해되는 그의 음악을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원리 역시 반복과 변주다. 글래스는 단순한 몇 개의 음으로 구성된 기본 단위를 반복시키면서 그 위에 새로운 단위들을 쌓아올려 일종의 ‘소리의 격자’들을 구성한다. 이런 면에서는 그의 음악 역시 스티브 라이히가 창시한 미니멀리즘의 패턴을 따르지만, 소리의 ‘색채’를 더 중시한다는 측면이 글래스의 미니멀리즘에서는 보다 강조된다. 월드뮤직에서 현대적인 전자음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사운드의 재료들이 그의 음악적 ‘격자무늬’를 쌓아올리기 위해 동원된다.
이런 면에서 그의 음악은 ‘디 아워스’의 형식과도 잘 어울린다. 전작이자 장편으로는 처녀작인 ‘빌리 엘리어트’에서도 세심한 음악구사력을 발휘한 바 있는 달드리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는 글래스의 음악을 동원, 자기 영화의 형식과 음악적 형식을 거의 일치시킴으로써 극적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논서치 레이블에서 발매된 사운드 트랙 앨범을 들어보면 이번 영화음악의 사운드가 글래스의 작품치고는 매우 고전적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다.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베이스 등 사용된 악기도 전통적인 유럽 챔버 뮤직 악기들이다. ‘쿤둔’에서도 음악을 맡은 바 있는 글래스는 영화에 따라 자유자재로 음악적 색깔들을 바꾼다. 그렇지만 어떤 음악에서든 글래스 특유의 오묘한 반복의 미학이 들어 있어 독특한 개성을 발휘한다. 사운드 트랙에서 글래스는 작곡만을 했고 지휘는 오랫동안 글래스와 음악을 함께해 온 마이클 리즈만이 맡았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